행복한 부부관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박선욱 · 시, 동화, 소설 및 평전을 씁니다.
2023/02/10
행복한 부부관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박선욱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갓 불혹을 넘긴 선배가 반 농조로 털어놓던 이 말은, 총각 시절의 내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결혼한 지 이태째인 나는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부터 어렴풋이 그 말의 속내를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
연애 시절의 꿈은 달콤했다. 달빛 흐르는 강물 속으로 띄워 보내던 장밋빛 환상은 대리석보다 단단했다. 호젓한 산책길과 햇빛 쏟아지는 공원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이 아침이슬보다 덧없어 못내 애태웠던 그 순간들은 영원으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가 웨딩마치의 경쾌한 음계 속으로 사라지고,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신혼살림은 갑자기 딱딱한 껍질을 둘러쓰고 누운 갑충처럼 차갑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노을에 젖어 한편의 감동적인 시를 읊조리고 슬픈 영화에 취한 채 베토벤의 〈월광〉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던 두 사람이, 어느 사이엔가부터 월급봉투의 부피를 가늠하는 촉감을 길렀으며 동창회에 참석한 친구의 멋진 옷차림과 자신의 수수함을 대비시켜 보게 되었을까.
모를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가 생기게 되었다. 다시 한번, 아이는 모든 부부싸움의 빌미였다. 아이는 차츰 아내를 독점하기 시작했고, 애비는 어린 연적에게 패배한 몰락한 영주였다. 질투심에 눈이 먼 애비인 나는 틈만 나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싶지 않아 책을 읽는 체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할머니 등에 업혀서 잠들어 있던 아이를 보자 문득 봄날의 눈부신 목련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배냇짓이 분명할, 양 볼에 떠오른 해맑은 미소, 가지런히 뻗어내린 버들 같은 눈썹과 유난히 긴 속눈썹, 뚜렷한 입매가 영락없는 제 에미였다. 그것을 느낀 순간, 비로소 뉘우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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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실천문학》 으로 등단. 시집 《회색빛 베어지다》 《눈물의 깊이》 《풍찬노숙》, 인물이야기 《윤이상》 《김득신》 《백석》 《백동수》 《황병기》 《나는 윤이상이다》 《나는 강감찬이다》 등. 《윤이상 평전: 거장의 귀환》으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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