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파놉티콘에서 벗어나길...

채희태
채희태 · 낭만백수를 꿈꾸는 교육사회학도
2024/03/04
광복 78주년이었던 지난해 8월 15일, “언론다운 언론, 교육다운 교육”의 기치를 내 걸고 <교육언론창>이 창간되었다. 사실 필자는 교육(만)을 주제로 하는 언론의 창간에 적지않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모름지기 언론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여론을 형성해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론은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추구한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억제하거나 부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는 경우가 잦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부동산을 보유하지 못한 국민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뀌는 교육 정책은 어떨까? 정책 이전에 근대 이후 보편화된 제도 교육이 모든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과연 절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작동하고 있을까?

교육을 비롯해 현재 작동하고 있는 모든 사회 체계들은 각기 다른 시대적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정치가 주로 권력과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 권력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사회적 가치의 분배를 위해 작동해야 한다. 행정 체계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사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 운영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전문성들은 루만(Niklas Luhmann)의 지적처럼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확대 재생산에만 몰입하고 있다.[^1] 일찍이 베버(Max Weber)[^2] 나 벤야민(Walter Benjamin)[^3] 등은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속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중에서도 가장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교육이며, 교육은 중세에 교회가 담당했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교육이 모든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절대 다수를 위해 작동하고 있다는 믿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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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사회 현상의 본질을 넘어 그 이면에 주목하고 싶은 兩是論者.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ZDNET 코리아에 칼럼 "IT는 포스트노멀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까" 연재. 공주대학교 평생교육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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