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는 허기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7/21
"이따 오후에 비 올 것 같은데 우산 가져갈래?"
"응 알겠어요."

까다롭지 않은 첫째는 내가 권하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편이다. 마른하늘 아래 우산을 들고 가는 게 귀찮을 법도 한데, 아이는 군소리 없이 성큼성큼 두 발을 디뎌 학교로 향한다. 아주 가끔 "비가 많이 오면 엄마가 우산 갖다 주면 되잖아" 하고 되묻는다. 그런 날은 알겠다고 하고 우산 없이 아이를 보낸다. 대신 엄마가 좀 늦을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카페 문을 닫고 가야 하니, 다른 엄마들보다 늦을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아이는 개의치 않고 알겠다고 말한다.  

귀가 시간이 됐는데 정말 장대비라도 쏟아지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부랴부랴 카페를 마감하고, 먼저 집에 도착한 둘째에게 집에 잘 있으라고 당부를 한 뒤 우산 두 개를 들고 집을 나선다. 하나는 활짝 펴서 한 손에 들고, 하나는 다른 손에 들고 쫄래쫄래 서두르는 발걸음. 돌봄 교실에 홀로 남아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올 때면 마음이 짠하다. 친구들은 언제 갔는지, 친구들이 먼저 가서 심심하진 않았는지, 잇따르는 질문들. 

외부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인 첫째는 마냥 쿨하다. 친구들 좀 전에 갔어. 혼자 블록하고 놀았지. 선생님이랑 이야기했어. 아이는 조잘대며 우산을 들고 간다. 엄마와의 대화보다 제 발 밑의 달팽이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 아이는 이제 제법 우산을 잘 받쳐든다. 처음 저 혼자 우산을 들 때만 해도 중심을 잡지 못해 불안했는데, 아이는 참 쑥쑥 잘도 자란다. 그래서 감사하고, 그래서 아쉬운 시간들.

이제는 그만 서러워하고 싶은데... 여전히 우산만 보면 떠오르는 지난 날. ©️unsplash

의도치 않아도 아이와 우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수십 년 전 한 초등학교 앞에 서고 만다. 강력한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설운 기억. 수업을 마치고 학교 밖으로 나온 아이들. 갑자기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아이를 기다...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1.1K
팔로워 1.4K
팔로잉 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