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연
전다연 · 나는 무엇이 될까?
2024/04/24

‘혹시 이 크루즈에는 심리상담사나 정신과 의사가 있나요?’

온보딩하던 첫날에 통역팀 리드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한 질문이었다.

승선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뷰


중국에서 잘 다니던 대학을 돌연 때려치우고 심리학을 공부하겠다며 미국으로 유학하러 간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여전히 심리학을 공부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생긴 습관은 바로 다양한 관계를 통해 발견되는 나의 모습을 반기며 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크루즈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그 수많은 승객들을 보니 가슴이 설렜다. 앞으로 이곳에서 얼마나 다양한 역동이 일어날까, 또 얼마나 다양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근데 이걸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니! 나로선 통탄할 일이었다.


크게 보면 이 크루즈는 대규모 집단상담의 현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비록 이 집단의 역동을 통해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전문가는 없지만, 활용 가치가 충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3달 넘게 매일 같이 같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 환경은 정말이지 고귀하다. 가족들과도 이렇게 오래 붙어있을 수 없는데, 이걸 생판 남과 함께 한다니! 여러 관계들이 얽히고설켜 우후죽순으로 탄생할 것이고, 그 복잡한 상호작용의 힘은 가히 대단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과거의 상처가 건드려질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냐에 따라 고생길이 열릴 수도, 혹은 내면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치유의 여정까지도 될 수 있는 환경이다.


이 설렘으로 온보딩에 집중 못해서 벌이라도 받는 듯, 갑자기 걱정도 엄습해왔다. 얼굴도 보지 못한 룸메이트들 생각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내 공간을 가족이 아닌 사람과 공유해본 적이 없다. 12년간 유학할 때도 그 흔하다는 기숙사 생활은 고작 1년 해봤고, 그마저 방이 분리된 2인용 기숙사였다. 크루즈 여행을 갑자기 준비하느라 진짜 정신없었나 보다. 이 긴 시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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