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라'던 경찰, 뉴스에 나왔다고 말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가넷
가넷 인증된 계정 · 전 고등학교 교사, 현 프리랜서✒️
2023/08/24
나는 이 악몽과 이 모든 싸움을 원치 않았다. 성희롱 피해자가 되어 기관들에 도움을 요청하고 내가 당한 피해와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그 모든 일을 나는 원한 적이 없다.

관리자든 교육청 장학사든 경찰관이든 그 누구에게도 화를 내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도 품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매일 평안하기를 바라며 내 삶에 충실하던 교사였을 뿐이다.

한 해 동안 가르친 아이 중 누가 이런 짓을 했을지 의심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죄 없는 학생들을 의심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웃으며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당장 곁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 당사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 사건 피해자 중의 한 명이 나야.” 하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충격으로 할 말을 잃던, 분노하고 당황하고 걱정하던 나의 친구들, 다정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으로 인해 나의 일상, 건강, 정신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교원평가 내용을 확인한 날도, 성희롱 피해에 대해 공론화가 진행되던 중에도 당장 병가를 낼 수는 없었다. 연말 몰아치는 업무와 기말고사를 앞둔 교과 수업을 당장 내려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근하고, 부랴부랴 파견된 교육청 장학사와 면담하고, 늦은 시간까지 꾸역꾸역 업무를 하고, 퇴근한 후에는 기자들의 연락을 받고, 고소장 접수를 위해 경찰서도 방문해야 했다.

지난해 12월 2일 금요일 교원평가 내용을 발견한 직후 관리자와 면담했다. 당일 밤 공론화 계정을 개설했다. 주말이 지난 12월 5일 월요일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학교에서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했지만 내가 당일 퇴근 후 방문한 담당 경찰서에선 공문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서에서는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고, 나는 사이버 수사 담당 경찰관에게 ‘교원평가’ 시스템에 대해서부터,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학생들은 어떻게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절차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야 했다.

‘인터넷 댓글’이 아닌 ‘교원평가 시스템’ 내에서 벌어진 일이며 작성자는 ‘수업을 들은 학생 중 한 명’이라는 점까지 세세히 설명한 후에야 사이버 수사팀에서는 상황을 조금 이해한 것 같았다.

 

내가 당시 경찰서에 들고 간 고소장은 2부였다. 주말 새에 인터넷 커뮤니티나 뉴스 댓글에 수도 없이 달린 2차 성희롱에 대한 고소까지 함께 진행하고자 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던 담당 경찰관은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아 ‘여성청소년과’에 상담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사이버수사팀 경찰과 함께 여청과에 가서 또 사건의 경위를 한참 설명해야 했다.

결국 두 개의 고소 건이 정식으로 접수되지 않은 채 나는 귀가해야 했다. 사이버수사팀 경찰은 자꾸 ‘반려’ 의사를 언급했다. 나는 ‘언론에 이미 보도된 바 있으니 참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허탈한 심정으로 경찰서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지 몇 시간 뒤 늦은 밤, 경찰서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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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고등학교 교사(~2023. 8.)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2022.12.) 했습니다. 악성민원을 빌미로 한 교육청 감사실의 2차 가해(2023.4.)로 인해 사직원을 제출했습니다.(2023.9.1.~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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