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사라진 역사책을 찾아서 - 해상잡록과 서곽잡록
2024/02/17
단재 신채호(1880~1936)에게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역사책들이 있었다. <해상잡록(海上雜錄)>과 <서곽잡록(西郭雜錄)>이라는 책이었다. <해상잡록>은 <조선상고사>에는 8번 인용되었고, <조선상고문화사>에 1번 인용이 되었다. 그런데 이 <조선상고문화사>에 인용된 내용도 <조선상고사>에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다른 책에서 거의 같은 내용이 인용된 것이다.
먼저 <조선상고문화사>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원문 그대로 옮기고 현대 역을 달아보겠다.
먼저 <조선상고문화사>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원문 그대로 옮기고 현대 역을 달아보겠다.
『輿地勝覺』에 가로대 襄陽에 四仙碑가 잇더니 胡宗旦의 부신 바가 되여 오즉 그 龜趺만 남앗다 하고 『海上雜錄』에 가로대 『先春嶺』下에 高句麗의 遺碑가 잇는데 胡宗旦이 부시고 오즉 『皇帝相加』 等 十餘字가 남엇스니 皇帝는 高句麗王의 自稱이오 相加는 고구려 대신의 일칼음이라 하엿스니 胡宗旦의 업시한 古蹟도 대개 이뿐 아닐지니라. (조선일보 1931년 10월 20일자 4면)
<여지승람>에 가로되 양양에 사선의 비가 있더니 호종단이 부순 바가 되어 오직 그 비석 받침만 남았다 하고, <해상잡록>에 가로되 "선춘령 아래에 고구려가 남긴 비석이 있는데 호종단이 부수고 오직 "황제상가" 등 십여 자가 남았으니, '황제'는 고구려 왕이 스스로 일컬음이오, '상가'는 고구려 대신을 일컬음이라 하였으니 호종단이 없앤 옛 유적이 대개 이뿐이 아닐지니라.
그럼 <조선상고사>에는 어찌 나오는가?
일즉 西郭雜錄(著者失名)을 보다가 『申砬聞先春嶺下 有高句麗舊碑潜遣人 渡豆滿江 模本而來 所可辨識者 不過...
@누군가의친구 맞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일차 사료이지요.
@노영식 광개토대왕비는 애초 역사책의 영역이 아닙니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존재 자체가 잊혀진데다 비문을 분석하지 않았으니 그간 금나라 황제 관련 비석으로 착각했죠. 더불어 고려, 조선 영토 밖에 있으며 청나라는 아에 성지로 봉금시켜서 접근도 못하게 했으니 당대 사람들이 거기 가서 분석할 수가 없죠. 그래서 역사책에 비문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결국 오늘날 광개토대왕비 관련 글들은 현대인들의 분석이 주 내용이죠.
@노영식 거긴 역사책이 안 나와서요. ㅎㅎ
광개토왕릉비도 다뤄주세요.
@노영식 광개토대왕비는 애초 역사책의 영역이 아닙니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존재 자체가 잊혀진데다 비문을 분석하지 않았으니 그간 금나라 황제 관련 비석으로 착각했죠. 더불어 고려, 조선 영토 밖에 있으며 청나라는 아에 성지로 봉금시켜서 접근도 못하게 했으니 당대 사람들이 거기 가서 분석할 수가 없죠. 그래서 역사책에 비문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결국 오늘날 광개토대왕비 관련 글들은 현대인들의 분석이 주 내용이죠.
@노영식 거긴 역사책이 안 나와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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