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없었죠. 죽고 싶어서 장례지도사가 되었다는 게(1)

한주원
한주원 · 생사문화 크리에이터
2024/01/22
이 이야기는 저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입니다.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저는 이 기간을 '잃어버린 10년' 이라 칭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지키려는 생존 본능 뭐 그런 것 때문에 자신을 해치는 나쁜 기억은 없애버린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뇌인지, 마음인지, 그 어디에서도 꺼내지 않았던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 볼게요. 손으로 썼다면 삐뚤빼뚤이었을거에요, 분명.

일본에서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남들은 유학생이었다고 하면 있는 집 자식인 줄 아는데 그냥 '자식' 입니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베스트 쓰리 안에는 꼽힐 것 같은 '내가 알아서 할게' 를 남기고 유학 길에 올랐습니다. 유학생은 합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 시간을 가득 채우고, 남들 잘 때 공부해서 석사 과정 내내 전액 장학금을 얻고 덤으로 공황장애와 우울증, 불안장애도 얻었습니다. 그 때의 영광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조울증으로 진화까지 했지요. 최근엔 성인ADHD까지 발견했습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한 것들은 사회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때 얻은 질환들은 아직도 저를 알차게 괴롭히고 있네요. 아무튼 그 시절의 일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기억에서 지워졌던 부분인 것 같습니다. 친구의 이름이 헷갈리거든요. 성이 기억나지 않아요. 외국인의 이름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성실하고 조용하던 홋카이도 출신의 24살 친구였던 것은 기억합니다. 깡마른 몸매에 늘 식사 대용 칼로리바만 먹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도 그 친구에게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일본 문화의 특성이었던 것 같아요. 사생활을 지켜주자,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유학생인 저와 한 학기 내내 단 둘이 팀플을 하게 되었는데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잘 도와주던 친절한 친구였습니다. 아마 MBTI는 대문자 I였을거예요. 저는 EEEE거든요.

그런 친구가 수업이 끝나고 저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합니다. 밖에서 밥을 먹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그 당시 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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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우울증, 조울증에 이어 최근 성인 ADHD 판정을 받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 모먼트를 즐기고 있는 11년차 정신과 전문 환자. 나를 괴롭히는 자살사고의 실체를 알고자 '죽음 덕질'을 하다 장례지도사가 되어버린, 시트콤 & 다큐 인생의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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