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검거에 부쳐①] ‘엘’은 불꽃이 지은 이름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어서

원은지
원은지 인증된 계정 · alookso 에디터
2022/11/25
🔥 alookso 원은지입니다.

엘이 잡혔습니다. 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 석 달만입니다. ‘과연 잡을 수 있을까? 단서를 잡기에 타이밍이 늦어버린 것 아닐까?’ 취재를 시작하고나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이던 생각입니다. 제가 이럴진대,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더욱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겠지요.

취재를 시작한 건 지난 1월이었습니다. 제보를 받고 피해자를 돕기 위해 추적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6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가운데 3명은 피해 성착취물이 온라인에 1년 넘게 유포되고 있었습니다. 

N번방 사건 공론화 이후,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을 텔레그램에서 보기 힘들어 졌는데도, 엘이 제작한 성착취물은 너무나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엘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수단으로 ‘추적단 불꽃’을 사칭했습니다.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접근해 성착취를 이어갔습니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에도 또다른 성착취를 저질렀습니다. 누군가 감시하지 않으면 성착취범은 언제든 다시 생겨나고,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엘은 몸소 보여줬습니다.

추적단 불꽃이 세상에 알린 텔레그램 성착취 N번방 사건 이후 2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N번방 방지법’이 만들어졌고 전국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돕는 센터들이 문을 열었습니다. 문형욱, 조주빈 등 성착취범들은 감옥에 갔습니다. 경찰도 수시로 텔레그램 생태계를 파악하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N번방 성착취에 함께 분노하고, 가해자를 단죄하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습니다. 

그런데도 텔레그램 성착취 생태계는 건재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결국 제게 메일을 보내는 것 밖에는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습니다. ‘왜’ ‘어째서’ 취재를 하는 동안 떨칠 수 없던 질문이었습니다.

엘 보도가 나가고 나서 세상은 ‘제2의 N번방’ 사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엘의 범죄행위는 수사 과정에서 낱낱이 확인되고 사법부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alookso는 엘의 검거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 이야기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지난 1월 첫 제보를 받았을 때부터 첫 보도가 나가기까지의 시간를 기록합니다. 

왜 피해자들은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지 못했는지, 왜 경찰이나 언론의 도움이 멀게만 느껴졌는지, 텔레그램 성착취 생태계는 어떤 상황인지 기록해 더이상은 제3, 제4의 사건이 나오지 않는데 쓰일 수 있게 말입니다.
alookso 유두호
원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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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 성착취 활동가 추적단불꽃 단, alookso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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