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칼부림에서 떠올린 여의도 살인질주 사건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8/04

 1997년 겨울 한반도는 추웠다.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온 나라를 먹장구름처럼 뒤덮고 있었다. 그 엄혹했던 한 해가 다 가기 직전의 12월31일 조간신문 한 귀퉁이에 또 하나의 살벌한 소식이 실렸다. “23명 사형, 15년 만에 최대 규모.” 법무부는 “장기 미집행 사형수가 너무 많아 교도소의 수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23명의 사형수 가운데에는 나이 서른도 안 된 김용제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사형을 선고받은 것은 1991년 11월30일로, 꼭 6년1개월 동안 사형수로 지낸 셈이다. 그사이 몇 번의 집행을 모면했지만 결국 사형대 앞에 서게 됐다. 그는 자신을 돌보아 온 수녀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인간 대접을 해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짧으나마 인간답게 살고 갑니다.” 그는 어떤 사연을 뒤로하고 밧줄을 목에 받았던 것일까.



지금처럼 공원이 조성되기 전, 한때 비행장으로까지 사용되었을 만큼 드넓었던 여의도 광장은 주말을 맞아 인파로 그득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자전거를 타며 내지르는 환성과 학생들의 새된 웃음소리, 모처럼 가족들끼리 손잡고 거닐며 나누는 담소 소리에 여의도는 시끌시끌했다. 언제부턴가 광장 한켠에 서 있는, 흰색 프라이드가 부릉거리며 들썩일 때 아무도 그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의 시야에  프라이드 차량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제 갈 길 가겠지.’
.
그러나 머금고 있던 미소를 풀지 않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입에서 나오는 비명의 데시벨은 점점 높아갔다. “어 어 어 어 저 미친놈이!” 프라이드가 마치 영양 떼를 덮치는 사자처럼 인파 가운데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비명과 엔진 소리가 여의도 광장의 하늘을 찢었고, 눈 깜짝할 사이 프라이드의 작달막하지만 튼튼한 몸체는 여러 사람들을 치받았다. 일단의 희생자들을 짓밟은 차는 맹수처럼 포효하며 방향을 바꿨다. 부웅 부우웅. 죽을힘을 다해 넓디넓은 광장에서 벗어나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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