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업좌득] 4. 좌파가 악화시킨 고립감

이완
이완 인증된 계정 · 위기를 앞두고 혼자되지 않는 나라
2024/04/11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해"
- 영국 노동당 슬로건

2021년 2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이 타오르는 남녀 갈등에 석탄을 던졌다. 당시 양평원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잠재적 가해자와 시민적 의무'라는 영상을 올렸는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여성은 성폭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남성은 이런 대우를 기분 나빠하기 보다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게 시민의 의무다.'¹ 2021년 즈음에는 여성운동에 대한 반발이 한창 확산하고 있던지라,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양평원이 교육자료를 만든 것이다.
 
양평원 강의에도 일리는 있다. 어두운 밤길에서 등 뒤에 낯선 남성이 따라온다면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죄추정 원칙을 일상으로 끌어와서 남성이 안전하다고 간주해야 할까, 아니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고 피해야 할까. 2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안전하고 싶다면 남녀를 떠나서 위험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무죄추정 원칙은 어디까지나 정부기관이 범죄를 수사하고 판결을 내릴 때 지켜야 할 원칙이다. 일상에서는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유죄추정해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나온 곳이 정부부처 산하기관이었다는 점이다. 2017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한 중학교 교사가 자살했다. 당시 교사는 여학생들의 무고 탓에 경찰로부터 조사받아야 했는데, 전라북도 교육청은 사실이 다 드러나기 전부터 교사를 범죄자로 몰아갔다. 심지어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끝냈는데도, 전라북도 교육청은 교사에게 직위해제 처분을 내렸다.² 경찰도 아닌 교육청이 무죄추정 원칙을 지키지 않은 탓에 누군가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기관이 여성을 보호하려다가 남성을 외면하는 사례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양평원은 오로지 남성에게만 주의하고 인내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사실상 남성이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모두에게 공정해야 할 정부가 저렇게 나오니,...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지식인이 되지 못한 지식중개상입니다. 사회연대를 연구하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입니다. 분별 없는 개인화와 각자도생 정신에 맞섭니다.
170
팔로워 183
팔로잉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