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빗물] 내가 모르던 색들

윤지슬
윤지슬 · 콘텐츠를 다루고 만듭니다
2023/04/22
어린 날 나는 내 물감을 가져본 일이 없다. 여러 곳을 떠돌며 자라고 친부모에게 자랄 때도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다보니 그랬을 것이다. 색연필도 싸인펜도 마찬가지였다. 미술 시간 채색도구가 준비물인 날 내 가방 속엔 남이 십 년 전 물감을 짜놓아 굳고 더러워진 팔레트, 짜리몽땅한 색연필 다섯 자루, 나오지 않는 여섯 자루 싸인펜 같은 것이 담겼다. 이미 수명을 다하고 색도 몇 가지 없는, 기능 잃은 도구를 이용해 색칠하는 일은 참 난감하고 어려웠다. 그나마도 가져가지 못해 벌을 서던 일도 잦았다. 그래서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면서도 미술 시간이 무서웠다. 준비물이 없다고 미술실에서 쫓겨나는 것도, 색칠을 할 때 꼭 필요한 색들이 없어 친구들에게 빌리고 거절당하는 것도. 그리고 오래도록 내가 색칠하기를 싫어하는 줄만 알고 살았다. 그렇게 나를 몰랐다.

   

어른이 되고서야, 나는 색칠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림 그리기를 즐겨하고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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