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읽는가 - 새로움은 디테일에 있다

전업교양인
전업교양인 · 생계를 전폐하고 전업으로 교양에 힘씀
2024/03/25
이미 아는 것들을 재발견하는 일

미야다이 ─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킹 머튼(Robert King Merton)은 사회조사의 목적을 명확하게 규정했습니다. 우선 모두가 아는 사실을 확인하러 가는 것은 최악의 조사라고 했죠. 그런 조사 말고,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면 조사자가 해석하지 못하는 편차가 반드시 나옵니다. 심지어 일반 상식으로 해석하지 못하죠. 그런 상식 혹은 자신이 원래 가진 도식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데이터의 편차를 발견하고 그 편차를 설명하려고 가설을 세웁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는 조사만이 허용된다고 했습니다.
─ 후루이치 노리토시,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

'사회학'이란 이름이 붙은 어떤 책을 읽는다. 그런데 저자는 사회학자는 아니다. 물론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위에서 인용한 후루이치의 책에서도 '인간은 누구나 사회학자다'라는 말을 하니까.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아페르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오지랖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1) 그러므로 '사회학'이란 단어를 쓴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 명의 아마츄어 사회학자로서 사회에 대한 관찰을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당혹스러운 점은, 그 내용이 위 인용에서 언급하는 사회학적 방식과 반대되는 태도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뭐랄까, 이미 충분히 널리 알려져 있는 얘기들을, 이 책 저 책의 내용을 짜깁기해서 길게 늘여 썼다는 느낌? 물론 그 책들의 출처 따위는 전혀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니 사회에 대해 ('가까운 날들'─아마도 일상─에 대해) 관찰을 함으로써 새로운 통찰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독서를 통해 배운 통찰을 적용하기 위해 일상의 사례, 그것도 진부하기까지 한 소재들을 가져다 써먹는다는 것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러니 머리말에서 강조하는 '관찰'의 소중함에 대한 역설이 무색해지고, 제목에서 써먹은 '사회학'이란 단어가 민망해진다. 

그에 비하면 《오마이뉴스》같은 곳에 종종 실리는 인터뷰나 자전적인 이야기가 훨씬 더 제목에 걸맞는 내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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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건 무엇인지 고민하다 자기 한 몸 추스리는 법을 잊어버린 가상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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