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은 채식주의자] 초등학교에서 개 키운 이야기

사니꼬리 · 멍멍.
202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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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사물함에 살았다. 아마도 그 전까진 대걸레나 빗자루가 담겨 있었을 낡은 나무 상자가 그 개가 태어난 곳이자 살아갈 곳, 그리고 죽게 될 곳이었다. 첫 번째 개가 어떻게 학교에 오게 됐는지는 모른다. 어쩌다 학교에 눌러 살게 된 개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으면서 개들은 오랫동안 학교 한 구석을 지키고 살았다고 했다.
대를 이어 학교에서 태어난 개답게, 그 개는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사물함에 살라고 하면 살고, 잔반을 먹으라하면 먹었다. 근처 철물점에서 구해온 무거운 쇠사슬을 목에 걸어도 반항 한 번 하지 않았다. 학교 한 구석 흙 바닥 위 반지름 일 미터 남짓의 동그라미가 그 개에게 허락된 세상의 전부였다.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 처음 인사를 갔을 때, 내가 처음 만난 건 교장도 교감도 아닌 바로 그 개였다. 개는 꼬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고 목줄이 끊어져라 높이 점프하면서 날 격하게 환대해줬다. 개와 가까이 지내본 적이 전혀 없어서 좀 놀란 나는 혹시 저러다 나를 물진 않을지를 질문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순하고 말 잘 듣는 강아지를 뽑는다면 분명 순위권 안에 들 개는 아무도 물지 않고 조금도 짖지 않고 만나는 모든 인간들을 그저 사랑만 하면서 학교에 살았다.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인간의 손길을 그리워하던 개와 낯선 학교에 마음 둘 곳이 필요했던 인간은 서로가 소중했다. 나는 틈나는 대로 사물함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개랑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채식주의자가 되었는데 그건 개의 눈동자가 너무 깊고 까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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