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6
“2021년 7월 5일, 충청남도 천안시 리첸스빌라 1004호 문 앞에 흰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경매 통지서'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 경매가 신청됐다는 내용이었다. 2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경매 통지서는 내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전세사기 피해자인 최지수 작가가 쓴 『전세지옥』의 책 내용의 일부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맞닥뜨린 현실을 담담히 써 내려갔다. 매일 드나들던 현관문이 경매통지서가 붙은 ‘지옥의 문’으로 바뀐 2021년 7월 5일부터 2023년 10월 2일까지 820일간 전세사기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뛴 기록의 결과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23층 도전실에 20여 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였다. 『전세지옥』을 쓴 최지수 작가와 전세사기 경험을 나누고 위로하는 자리였다. 북 토크에 패널로 나선 피해자도, 자리에 앉아 묵묵히 듣던 피해자도,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공감했다.
전세사기를 겪었다는 일
- 최지수 『전세지옥』 저자
제 인생이 정말 전세사기에 잠식당한 기분이었어요.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 없고, 누구한테도 책임지라고 할 수 없어서 너무 절망적이었죠.
올해 4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분들이 잇따라 운명을 달리하실 때, 저도 그분들 따라 죽고 싶었어요.
베르테르 효과라고 있잖아요. 누군가 자살할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도 큰 영향을 받아 따라 죽는다는. 저도 인천 미추홀구에 계신 피해자께서 자살했을 때 마음이 크게 일렁였어요.
만약 내가 죽으면, 다른 분도 똑같이 영향을 받겠구나.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죽지 말고 살아야겠다. ‘다른 피해자분들도 다 죽지 말고 살아가자’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 김수정 극단 신세계, <슈퍼맨 오브 부동산> 연출
저는 책에서 이 구절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꿈을 꾸었다. 집안 곳곳에 물이 샌다. 벽마다 갈라진 틈이 벌어질수록 물줄기도 강해진다. 어느새 틈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 천장이 무너지고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방 안을 가득 채운다.”(『전세지옥』 167쪽)
최지수 작가님이 꿈을 꾼 부분인데, 사실 저도 유사한 꿈을 꿨어요.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벅찬데, 그 뒤에 쳐내야 할 일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오잖아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 이철빈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저는 처음 전세사기를 인지했던 게 2022년 6월 무렵이에요. 처음 2~3개월 정도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그다음부턴 마음을 고쳐먹고, 스스로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생각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당장 많이 해야겠다. 그리고 저만큼 움직일 여력이 없는 분들을 대표해서 좀 더 많이 활동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걸 동력 삼아서 지금까지 전국대책위 활동도 계속하고 있는 거고요.
올해 4~5월이 정말 힘들었는데요. 같은 임대인의 다른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게 아니고, 과로사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정말 무기력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분인데… 두 배가 된 이자를 감당하려고, 투잡 쓰리잡 뛰다가 돌아가셨던 그 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작가님도 써주셨고, 저도 다른 피해자분들께 계속 말씀드리지만, 죽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