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을 국제역으로!' 시베리아 건너 유럽에 간 청년들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3/11/18
▲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포스터 ⓒ 씨네소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의 눈 덮인 벌판을 횡단한 적이 있다. 목적지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 죽은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묘지였다. 도스토예프스키 말고도 차이코프스키 같은 유명인도 함께 묻힌 이 수도원 공동묘지는 러시아제국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묘를 본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내에 막 세워진 박경리 동상을 구경하고 돌아올 참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와 이르쿠츠크, 바이칼 호수와 모스크바를 거친 보름간의 일정이었다.

마침 읽고 있던 <토지> 몇 권을 챙겨들고는 기차에서, 여행지에서 틈틈이 챙겨 읽고는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아무르강을 따라 걸을 때 나 역시 그 강을 따라 걸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선 이곳이 100년 전 소설 속 배경과 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여행은 많은 것을 남겼다.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하바롭스크 대학교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북한 학생들과 대화하던 순간을, 러시아의 가난한 대학생들과 번역기를 돌려가며 더듬더듬 문학을 이야기하던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내게 과거의 낭만이자 현재의 추억이 되었다.

여행은 추억을 남긴다. 여행지의 온도, 냄새, 바람의 세기,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까지가 그 추억을 이룬다. 그러니 영화나 소설 속에서 익숙한 장소를 만나게 된다면 더는 처음 그곳을 보는 이처럼 객관적이 될 수 없다. 어느 순간 일어난 추억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여행이 좋은 감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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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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