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투위’ 해직기자에서 <한겨레> 창간 주역으로 - 조성숙
2023/06/12
한국 여성 언론인들의 대모, 조성숙(趙成淑, 1935~2016)
무서운 아버지와 다섯 자매의 맏이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인상부터 찌푸렸다. 웃음을 보이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찡그린 표정으로 일관했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 매일같이 방과 마루를 깨끗이 쓸고 닦아야만 했다. 먼지 한 톨이라도 발견될라치면, 여자만 여섯이나 있는 집이 청소도 제대로 안한다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렇게 눈치를 보며 살았지만 아버지는 공연히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다. 딸만 다섯을 내리 낳아 늘 풀이 죽어 있던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서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곁에 있거나 말거나, “대를 이을 다른 여자를 얻어라”고 아버지에게 충고하는 큰댁 식구들과 동리 어른들 때문에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눈치를 보며 살았지만 아버지는 공연히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다. 딸만 다섯을 내리 낳아 늘 풀이 죽어 있던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서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곁에 있거나 말거나, “대를 이을 다른 여자를 얻어라”고 아버지에게 충고하는 큰댁 식구들과 동리 어른들 때문에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해 봄, 어머니는 이튿날 소풍 갈 큰딸에게 예쁜 배낭을 사다주었다. 큰딸은 너무나 좋아서 그걸 가지고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느닷없이 “너는 뭐가 좋아서 그걸 만지작거리느냐”라고 소리를 질렀다. 큰딸은 야단맞는 이유도 모른 채 무안해 울어버렸다. 큰딸은 한참 나이가 들어서야 그때 왜 아버지에게 한 번도 대들지 못했을까 생각을 했다. 오히려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늘 화를 내던 아버지를 연민하기까지 했던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아버지는 그래도 큰딸에게는 아주 가끔 책도 사주고 낚시에도 데리고 갔다. 그나마 다섯 자매 중 큰딸이 가장 활달하고 씩씩했기 때문이다. 장녀를 장남처럼 키우고 싶었던 까닭도 있었다. 아버지가 큰딸에게 처음 사준 책은 <가마우지>라는 제목의 일본 동화책이었다. 어부가 굶주린 가마우지의 목을 줄로 묶어 머리를 물속에 넣은 뒤...
조성숙이라는 분을 새롭게 알게됐습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분이시네요.
기자를 응원합니다
@최성욱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나 한겨레 창간이나 우리 미디어사의 굵직한 사건들이었죠. 현대사는 공교육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니 현대사 지식이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습니다.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살구꽃 네. 한겨레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겨레가 잘 이해하고 나아가야겠습니다.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이런 글을 보면 언론의 역사도 어느 정도는 배워야 하는데 공교육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현대사는 배우면 배울수록 아쉬운점이 드러나니 참....모르는 독립운동가도 너무 많고 참 배울수록 모르는게 더 많아진다는 말이 실감나네요.
한겨레 창간할 때, 얼마 안 되지만 창간주주로 창간일 1988년5월 15일에 그 신문을 들고
남편될 사람하고 대전 시댁될 집에 인사하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한겨레창간 소식을 이렇게 접하니 감개무량입니다. 조성숙님은 생소하네요. 훌륭하신 분이군요.
이사다니면서도 한겨레만 보다가 맘에 안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지역신문 구독하지만,
고인의 뜻을 잘 살려 한겨레신문 초심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서우 저도 대학 다닐 때 학교 오가면서 전철에서 한겨레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한겨레가 늘 제 역할을 충실하게 잘 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청자몽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글 올리는 시간 그게 뭐라고. 의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염려 않하셔도 됩니다. 청자몽 님 늘 감사드립니다.^^
한겨례신문 이 그나마 중립성 글을 많이 쓰고 있어 믿고보던 신문 이었지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처음 한겨레 신문을 본게, 1988년 중3때 국어시간인가? 선생님이 가로로 된 신문이 나왔는데! 세상에 한글로만 되어 있어.
라고 소개해주셔서! 알게 됐어요. 보여주셨던거 같기도 하구요. 그 다음해에 1989년에는 담임쌤이 교실 뒤 게시판에 일부 내용을 잘라 붙여주셔서, 읽어보기도 했었어요. 굉장히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맨날 가로쓰기에 한자 범벅 신문만 보다가.. 신세계네 했죠. 늘 정의의 편에 선 신문이다 생각했는데... 점점 세월이 흘러, 뭔가 많이 바래져가는 느낌도 들구요. 초심을 잃지 않는게 쉽지 않는거 같습니다.
소개해주신 어르신은 처음 알게 됐습니다.
좋은 글, 그리고 늘 새로운 알아감에 감사합니다.
....
덧.
작가님! 저 때문에 ㅠ 글 올리시는 시간을 신경쓰신거 아닌지;; 싶어 죄송합니다! 편한 시간에 올리세요. 저는 아무때나 올라와도 좋습니다. (우연히 시간을 몇번 보니; 그랬던건데 ㅠㅠ)
죄송해요!!!
한겨레 창간할 때, 얼마 안 되지만 창간주주로 창간일 1988년5월 15일에 그 신문을 들고
남편될 사람하고 대전 시댁될 집에 인사하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한겨레창간 소식을 이렇게 접하니 감개무량입니다. 조성숙님은 생소하네요. 훌륭하신 분이군요.
이사다니면서도 한겨레만 보다가 맘에 안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지역신문 구독하지만,
고인의 뜻을 잘 살려 한겨레신문 초심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성욱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나 한겨레 창간이나 우리 미디어사의 굵직한 사건들이었죠. 현대사는 공교육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니 현대사 지식이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습니다.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살구꽃 네. 한겨레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겨레가 잘 이해하고 나아가야겠습니다. 읽어주셔 고맙습니다.
이런 글을 보면 언론의 역사도 어느 정도는 배워야 하는데 공교육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현대사는 배우면 배울수록 아쉬운점이 드러나니 참....모르는 독립운동가도 너무 많고 참 배울수록 모르는게 더 많아진다는 말이 실감나네요.
@최서우 저도 대학 다닐 때 학교 오가면서 전철에서 한겨레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한겨레가 늘 제 역할을 충실하게 잘 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청자몽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글 올리는 시간 그게 뭐라고. 의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염려 않하셔도 됩니다. 청자몽 님 늘 감사드립니다.^^
한겨례신문 이 그나마 중립성 글을 많이 쓰고 있어 믿고보던 신문 이었지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처음 한겨레 신문을 본게, 1988년 중3때 국어시간인가? 선생님이 가로로 된 신문이 나왔는데! 세상에 한글로만 되어 있어.
라고 소개해주셔서! 알게 됐어요. 보여주셨던거 같기도 하구요. 그 다음해에 1989년에는 담임쌤이 교실 뒤 게시판에 일부 내용을 잘라 붙여주셔서, 읽어보기도 했었어요. 굉장히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맨날 가로쓰기에 한자 범벅 신문만 보다가.. 신세계네 했죠. 늘 정의의 편에 선 신문이다 생각했는데... 점점 세월이 흘러, 뭔가 많이 바래져가는 느낌도 들구요. 초심을 잃지 않는게 쉽지 않는거 같습니다.
소개해주신 어르신은 처음 알게 됐습니다.
좋은 글, 그리고 늘 새로운 알아감에 감사합니다.
....
덧.
작가님! 저 때문에 ㅠ 글 올리시는 시간을 신경쓰신거 아닌지;; 싶어 죄송합니다! 편한 시간에 올리세요. 저는 아무때나 올라와도 좋습니다. (우연히 시간을 몇번 보니; 그랬던건데 ㅠㅠ)
죄송해요!!!
조성숙이라는 분을 새롭게 알게됐습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분이시네요.
기자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