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수다 | 돌봄을 둘러싼 우정 그리고 작별 맞이하기

마민지
마민지 인증된 계정 · 영화감독, 작가
2023/09/18
프롤로그. 코로나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당신에게
1화. 엄마의 죽음: 연유, 예감, 시간, 장소
2화. 엄마의 죽음: 준비, 시작, 보관, 기억
3화. 엄마의 유품들: 엄마가 남긴 유품과 옛 기억
4화. 엄마의 유품들: 유품 속에서 찾은 ‘입양’ 단서


아침 10시 정각이 되면 중환자실 앞을 서성이던 보호자들이 환자 이름과 자신의 이름, 환자와의 관계 등을 적고 한 줄로 서서 차례로 중환자실에 들어간다. 각자 병상 위치로 이동하고 나면 저마다 오늘의 안무를 묻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잔소리를 하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나는 엄마의 병상으로 향하면 먼저 손목시계의 녹음기를 켰다. 그리고 괜히 잘알지도 못하는 인공호흡기와 에크모 기계를 골똘히 들여다 본다. 이어서 서랍장에서 물티슈를 꺼내어 엄마 얼굴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발에 고운발 크림을 바르고, 모자라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한다. 담당 간호사에게 지난밤 큰 문제는 없었는지 여쭤보고 주치의의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목소리가 멈출 때면 오디오 파일에는 의료 기계음만 남는다. 

어느새 추운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엄마가 퇴원한다면 함께 봄소풍을 가고 싶어서 개나리꽃 조화와 벚꽃 모양 장난감을 사서 가족사진 옆에 올려두었다. 엄마는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어딘가에 먼저 놀러가자고 잘 말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추석 연휴에는 가평에 있는 쁘띠 프랑스에 데려가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일정을 세웠지만 막상 휴일이 되어서도 나는 또 일을 하느라 바빴다. 이번 추석 말고 다음에, 다음 연휴에 가자고 했다. 뒤늦게 후회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자고 할때 볼걸’, ‘목소리라도 한번 더 들을걸’, ‘밥이라도 같이 먹을걸’,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도 ‘같이 가자고 할때 갈걸’하며 한동안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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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를 기반으로 창작활동을 한다. 사회 주변부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문화예술사업을 기획한다.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2018), <착지연습(제작중)> 연출, ‘상-여자의 착지술' 프로젝트 기획단, 에세이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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