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리고 길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4/05/24
어쩌다 보니 수업 하나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작년부터 책과 관련한 예산을 지자체로부터 지원받고 있는데, 그 사업의 일환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다 그 중 하나를 내가 담당하게 됐다. 오래 전부터 머릿 속을 부유하던 꿈 하나가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발제해 토론을 하고, 글을 쓰는 것. 오랜 시간 머릿 속을 굴러다니던 생각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자리에서 불쑥 말이 되어 내 입밖으로 튀어나왔고, 결국 수업까지 맡게 되었다.

수업이라고는 이십 대 초중반 잠시 아르바이트로 학원강사와 과외 선생님을 해본 게 다인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수업을 맡다니. 글쓰기 모임도 수업이라 부른다면, 경력이 좀 늘어날까. 어린 학생들을 이끌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낯선데, 토론을 진행하고 글쓰기를 지도해야 한다니. 이 방면으로 아무런 경력이 없는 사람이 덜컥 수업을 맡았으니, 아무래도 미친 게 틀림 없다 싶을 만큼 나는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

MBTI로 말하자면 나는 N이다. 나무보다 숲을 읽는 걸 더 좋아한다는 말이다. 의도가 명확하지 않으면 동기부여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이런 나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 번째 수업은 ‘생각’에 대한 것이었다. 토론을 하고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려면 ‘왜 생각해야 하는지’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했다.

두 번째 수업은 토론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류 역사에서 토론은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왜 토론이 중요한지. 토론 끝판왕이었던 소크라테스를 소환해 그의 활약과 죽음을 거론하며 토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번째 수업에서는 선정한 그림책을 함께 읽고, 각자 궁금한 질문을 적어보았다. 이왕이면 닫힌 질문이 아니라 열린 질문으로. 함께 논의할 가치가 있는 질문들을 적고 발표했다.

네 번째 수업은 드디어 토론. 주제는 그림책에서 발제한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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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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