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 세상을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8/06

1882년 영국 런던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이자 <영국 인명 사전>의 초대 편집장인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영향 아래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서재를 학교 삼아 많은 책을 읽었고, 아버지는 자신과 쏙 빼닮은 둘째 딸을 사랑했다. 아버지는 유달리 책을 좋아하는 딸에게 다독 하되, 마음에 드는 책은 꼭 재독할 것을 권유할 만큼 개인적인 독서법도 전수해주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처럼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꿈은 좌절되었다. 대학은 남자들의 전유 공간이지, 여자들이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아버지에게 대학에 가고 싶다고 몇번이나 간청했지만, 아버지는 매번 딸을 단념시켰다. 대신 딸을 위해 가정 교사를 고용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남편감을 골라주었다. 아버지는 딸의 가슴 속에서 울분의 씨앗이 자라는 걸 눈치채지 못 했다. (1)

그는 하는 수 없이 다른 길을 찾았다. 1896년 킹스 칼리지에서 그리스어와 역사 과목을 청강했고, 해소되지 않은 지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대영도서관에 드나들었다. 치열하게 읽고 쓰며 작가로서 업적을 쌓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상이 무너졌다. 말년의 울프는 파시스트 독재에 맞서 평화주의와 반제국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그는 에세이 <3기니>에서 "여성으로서 나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선언을 통해, 여성에게 조국은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특정 지명으로 규정되지 않은 전 세계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파시즘은 가부장제가 극단적으로 발현된 형태라서, 남성들의 전유물인 국가는 여성인 자신에게 애국심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차별, 인종 차별이 만연한 시대를 살았다. 여성은 제도 교육의 세례를 받을 수 없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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