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0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2세는 펠리페 4세와 그의 조카이자 두번째 아내였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의 아들이었습니다. 남성후계자를 원했던 아버지 펠리페 4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었으며 그는 청소년기를 넘겨서 성인으로 성장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천척적으로 여러가지 질병을 앓았으며 이것은 거듭된 가까운 친족간의 근친혼으로 인한 결과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은 사실 그가 성인이 되었어도 제대로 통치는 커녕 자신의 몸을 제대로 추스릴수도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카를로스 2세에게 후계자가 될 자녀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뻔히 알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카를로스 2세는 두번 결혼했지만 두 아내 모두 아이를 낳지 못했기에 더욱더 그랬습니다.
결국 카를로스 2세 생전에 그러면 누가 에스파냐 왕위게승자가 되어야하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690년대 카를로스 2세는 한명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합니다. 바로 바이에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였습니다. 요제프 페르디난트는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엠마누엘과 그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토니아 여대공의 아들이었습니다. 마리아 안토니아 여대공은 카를로스 2세의 누나로 황제 레오폴트 1세와 결혼했던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펠리페 4세의 자녀중 큰딸인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결혼하면서 왕위계승권리를 포기했었습니다. 반면 작은 딸이었던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왕위계승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673년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죽은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인 마리아 안토니아 여대공이 어머니의 계승권리를 이어받았으며 마리아 안토니아 대공도 1692년 아들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낳고 사망했었기에 결국 바이에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가장 강력한 에스파냐의 계승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카를로스 2세는 바이에른...
결국 이런 상황은 카를로스 2세에게 후계자가 될 자녀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뻔히 알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카를로스 2세는 두번 결혼했지만 두 아내 모두 아이를 낳지 못했기에 더욱더 그랬습니다.
결국 카를로스 2세 생전에 그러면 누가 에스파냐 왕위게승자가 되어야하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690년대 카를로스 2세는 한명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합니다. 바로 바이에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였습니다. 요제프 페르디난트는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엠마누엘과 그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토니아 여대공의 아들이었습니다. 마리아 안토니아 여대공은 카를로스 2세의 누나로 황제 레오폴트 1세와 결혼했던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펠리페 4세의 자녀중 큰딸인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결혼하면서 왕위계승권리를 포기했었습니다. 반면 작은 딸이었던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왕위계승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673년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죽은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인 마리아 안토니아 여대공이 어머니의 계승권리를 이어받았으며 마리아 안토니아 대공도 1692년 아들 요제프 페르디난트를 낳고 사망했었기에 결국 바이에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가장 강력한 에스파냐의 계승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카를로스 2세는 바이에른...
유럽 왕가 특히 공주님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살아있는 왕족은 관심 없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과학 이야기도 할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