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겨웠고, 다 행복했다 (끝)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2/12/17

 마지막 출근을 마쳤다. 10여 년에 걸친 학원 생활을 그만 두기로 했다. 감회가 남다를 줄 알았다. 그래도 인생의 한 꼭지를 마무리한 것인데. 지금은 그냥 이런 생각이 든다. 다 지겨웠고 다 행복했다.

 학생들은 언제나 어렸고 나는 조금씩 나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사실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것이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는 매일 성장하는데 나는 몇 년을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구나.

 학생들이 너무 예뻐 보이는 날이면, 질투에 몸서리쳤다. 학생들은 앞으로 망칠 시험들을 걱정했지만, 나는 이미 망쳐버린 인생의 시험들을 수습하며 살고 있었다. 가끔은 정작 나는 살아내지 못한 건강한 청소년기를 너희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내가 하는 일이 고작 청소년들을 괴롭히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울적하여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서 매년 별반 다르지 않은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이 직업이 한없이 지겹게 느껴졌다. 나는 올해도 똑같은 얘기를 할 것이고 똑같은 데서 분노하며 똑같은 데서 좌절하겠지. 근데도 이 일을 왜 계속 하냐고 누가 물을 때면, 먹고 살기 위해 이 일을 한다는 핑계는 언제나 적절하고 간명했다. 그러나 먹고 살 길은 이것 말고도 많으므로 먹고 살기 위해서만 하는 일은 분명 아니었다. 

 이 사회에서 청소년을 묘사하는 말들은 너무 투박하다. 자신들의 정치적 취향과 맞는 행동을 하면(촛불 or 태극기) 그들을 대한민국의 희망 쯤으로 부르다가도 어느 순간엔 어른들의 인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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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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