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등산화 고민담2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10/18


게다가 새로 산 등산화인데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디자인이다 싶어 기억을 잘 더듬어 보니, 어머니가 홈쇼핑으로 충동구매하는 바람에 맞지도 않는데 몇 년을 억지로 신어야 했던 운동화와 흡사했다. 물론 성인이 되어 부모님이 사준 운동화가 마음에 드네 안드네 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부끄러운 일이고, 그럴 거면 애초에 받지 말지 그랬냐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다싶다. 하지만 방송에 비친 운동화는 제법 괜찮아 보였던데다, 그때는 운동화 세트 구매에 가담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가족 전체의 행복에 득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결과로 구입한 신발이 취향이나 발 둘 중 하나라도 만족시켰다면 좋았으련만……. 메쉬와 반짝이는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진 키높이 운동화는 초등학생 신발처럼 보이는 것도 모자라서 발까지 불편했다. 영어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다’ 같은 표현이 있는데, 정말이지 취향에도 발에도 맞지 않는 신발을 계속 신는 짓이란 육체와 심리 양쪽으로 피곤한 일이다.

회상이 길었다. 아무튼 그런 과거를 떠올리고 보니 아무래도 새 신발에도 정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신발을 신고는 산행이 그리 개운치 않을 게 분명했다. 방금 사귀기 시작한 새 애인이 전 애인과 똑같은 습관을 가졌음을 알게된 것과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흔히 등산 고수들은 등산화를 고를 때 디자인을 보지 말고 기능을 보라고 한다. 그러나 취미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고 타인에게도 거리낌없이 보여줄 수 있을 외형을 갖추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에 대한 호감과 마찬가지다. 내면의 매력을 아는 게 더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당장 내면부터 알 방법이 없으니 외형부터 좋아하는 게 취미로 빠져드는 길이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등산은 험한 길을 오래 걷는 고역인데 이걸 멋도 없는 꼬락서니로 한다는 건 여러모로 지독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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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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