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은 쓰지 못한 자들의 무덤,이다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1/09

 작가가 되고 싶었고, 사실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열아홉에 고등학교 졸업장 대신 문체부 장관의 문학상장을 받았을 때, 드디어 내 재능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라 믿었다. 고등학교 자퇴는 내 비범한 문학 세계의 시작이었고, 술담배로 가득했던 청소년기는 내 문학적 재능이 성숙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죄다 거짓말이다.

 그해 대입 논술 시험에는 모두 떨어졌다. 문학적 글쓰기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 논술학원 선생이었던 H는 학원 알바에 나를 꽂아주는 것으로 내 입시 실패의 책임을 대신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10년에 걸친 사교육 생활의.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면서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서른 살이 된 지금 결국 사교육 자영업자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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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은 쓰지 못한 자들의 무덤,이었다. 하지만 학원이 제 무덤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영광 비스름한 시절이 있었고, 그 영광이 곧 손에 잡힐 듯 했으므로 유목민의 마음으로 언젠가 떠날 것을 각오했다. 내가 있던 학원은 제법 큰 규모의  입시 국어/논술 전문학원이었다. 강사들의 전공은 대부분 국문학이나 문예창작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전공들이 내뿜는 낭만 따위를 기대한 것도 같다. 스무 살이었으니까. 우습지만, 그땐 그랬다.

 물론 그 낭만이 깨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바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대학시절 촉망받는 문청이었으나 결국 등단은 안[못]한 H와 어느 지방 소재 대학의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에 있는 선생 이 둘과 함께 일했다. H는 적어도 한국 문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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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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