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 가네코 후미코

윤지연 · 교사
2024/02/01
가네코 후미코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 가네코 후미코

후미코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여동생(이모)와 결혼하고 어머니는 재혼하여 무적자가 된다. 그는 친척집에 전전하며 힘든 생활속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그는 일본과 조선에서 생활하게 된다. 박열의 동지와 애인으로 살다 감옥에 갇힌다. 그는 사형에 처해지고 23살의 나이로 자살한다.
 
이 책은 후미코의 수기이다. 그의 일본과 조선생활, 그의 사랑과 박열과의 관계에 대해 기술한다. 박열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녀는 조선독립의 숨은 공로자이다.
 
후미코를 보면서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의 비 이방자(마사코)가 생각난다. 그는 정략결혼을 했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평민으로 각하되어 대접받지 못하고 장애인과 빈민사업을 하다 낙선재에서 죽는다. 일본인으로 조선을 사랑한 여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후미코는 나로서의 독자적인 삶을 살았다.
 
“개인의 자유의지로 결정한 선택이 비록 죽음을 향한 길일지라도 그것은 삶의 부정이 아닌 긍정일 것이다.” -영화〈박열〉의 가네코 후미코 대사 중에서
국가와 가부장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자신을 살고자 했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이 수기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던 그녀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유일한 선물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박열의 사상적 동지이자 연인이며 옥중에서 결혼한 부인이다. 스물세 살의 나이에 옥중에서 자살이라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그녀의 삶과 사상 투쟁은 한 편의 ‘비극적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무적자(無籍者)로서, 여자로서, 나아가 밑바닥 삶을 살면서 자기의 뜻과 의지를 무시당한 아픔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식민지 조선은 확대된 자아였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두 사람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대학살을 무마하려고 일제가 조작한 ‘천황폭살사건’으로 법정에 서면서 세상에 알려진다. 식민지 청년 박열과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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