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댄서
서툰댄서 · 네트워크를 꿈꾸는 자발적 실업자
2024/03/25
합리적인 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대화의 참여자들이 단어들을 같은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면서 대화를 진행하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수학의 개념들처럼 명확한 정의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언어학자 폴 앨번(Paul Elbourne) 교수가 2011년 출간한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첫부분은 단어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chair라고 하는 단어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있어서 잘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일상적이고 단순한 의미를 갖는 단어조차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예외가 없는 방식으로 정의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의자를 앉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가구로 정의한다면, 쇼파나 벤치도 일종의 의자일까? 실제로 사람이 앉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극을 위해 장식용 소품으로 제작된 의자를 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일까?
어떤 단어들은 경계가 애매한데 머리숱이 얼마나 적어야 대머리라고 부를 수 있는지, 파란색과 보라색의 경계는 어디인지, 꽃병에 꽂아둔 생화는 언제까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은 얻기 어렵다. 손수건이 의류에 속하는지, 커텐이 가구에 속하는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답변은 일치되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그런 사례는 많은데, 예를 들어 금속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모두 동의하는 ‘금속’의 정확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원자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물질의 최소구성단위’라고 하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으나 과학지식의 발전과 더불어 그 정의는 변화를 겪었다. 저자에 따르면 하나의 단어라도 제대로 정의하는 일은 수학 분야 외에서는 “경악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명확한 정의가 어렵다는 것만으로 대화가 항상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의자라는 단어를 엄밀하게 정의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의자라는 단어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이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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