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사와 현대의학의 신화 (2), #1 통로를 확보하라

곽경훈
곽경훈 인증된 계정 · 작가 겸 의사
2023/02/10
예전에 적은 메디컬에세이의 원고입니다. 대략 단행본 1권 정도의 분량인데 어쩌다보니 출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껏 제가 적은 메디컬에세이와 비슷비슷한 내용이라 새로운 출판사를 구하는 것보다 얼룩소에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주 1-2편 정도 올릴 계획입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1.
이동식 침대에 앉은 남자는 창백한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힘겹게 내쉴 때마다 식은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착용한 산소마스크도 도움이 되지 않아 아직은 의식이 명료했으나 당장이라도 심정지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독특하게도 구급차가 이송하는 대부분의 사례와 달리 남자의 이동식 침대는 등을 최대한 세워 실제로는 '이동식 의자'에 가까웠다. 물론 의료인이라면 쉽게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심장 혹은 신장의 기능이 저하하여 폐부종(pulmonary edema)이나 흉수(pleural effusion)가 발생한 경우에는 앉으면 호흡곤란이 다소 완화하고 누우면 악화한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폐부종은 폐에 안개 같은 습기가 차는 질환이며 흉수는 폐에 물이 차는 질환이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분위기와 달리 호흡곤란을 호전하는 치료는 어렵지 않다. 이뇨제를 투여해서 소변량이 증가하면 대부분은 호흡곤란이 호전하며 이뇨제 투여 후 호흡곤란이 호전할 때까지 짧으면 1-2시간, 길면 2-3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자는 폐부종과 흉수 같은 질환에 해당하지 않았다. 폐부종과 흉수는 응급실에서 빈번하게 마주하는 '일상적인 질환'에 불과하나 남자는 대부분의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악몽을 선사할 가능성이 큰 질환에 해당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맞서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환자를 태운 사설구급차가 막무가내로 도착했을 때부터 그랬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저 아래 바닥으로 곤두박질하는 외줄타기, 약간만 삐끗해도 공들여 세운 모든 것이 무너지는 도미노게임에 휘말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간호사에게는 담담하게 말했다. 

"일단 후두...
곽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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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메디컬에세이를 쓴 작가 겸 의사입니다. 쓸데없이 딴지걸고 독설을 퍼붓는 취미가 있습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날마다 응급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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