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고마운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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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왜 이럴까요?

정욱식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북한이 막말과 무력 시위를 동반해 수위 높은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고 남한을 향해 “주적”, “전쟁”, “초토화” 같은 표현을 썼지요. 그래서 묻게 됩니다. 북한이 왜 이러는 걸까? 저 역시 북한의 언행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몇 가지 의견을 건네고자 합니다.

먼저 ‘체제 결속’입니다. 많이들 들어보신 얘기겠지만 저는 결을 달리하는 분석을 내놓고자 합니다. 윤석열 정부와 대다수 언론 및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이 일부러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 체제 결속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최근 북한은 식량 생산과 경제 성장에서 만만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체제 결속’은 다른 관점입니다. 김정은 정권은 2018~19년 한국 문재인 정부와 미국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평화 프로세스에 나섰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기대도 상당히 컸고, 나름 성의도 보였습니다.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국인 및 미군 유해 송환,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정부 대표단에 대한 역대급 환대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은 대북 제재를 강화했고, 한국은 역대급 군비 증강에 나섰습니다. 트럼프의 약속을 어기고 한미 연합훈련도 재개했으니 김정은 정권으로선 주민들에게 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지요.

그런 시점에 적대적인 대북관을 분명히 하는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자 한미에 미련을 갖는 대신 남북 관계의 적대성을 확실히 하는 편이 체제 결속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나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줍니다. 조롱 어린 어투로 도배된 담화의 요지는 자신들을 헷갈리게 한 문재인 정부에는 ‘배신감’을, 대북 적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는 ‘고마움’을 표한 것입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는 한미 혹은 한미일의 군사 활동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대응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북한은 말로 거칠게 항의하며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를 고도화하고 핵 정책을 법제화한 후에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군사력 균형을 이룬 만큼 상대의 군사 행동에 행동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최대한 큰 두려움을 안겨줘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심사입니다. 이는 한미 동맹과 ‘데칼코마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미도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 무력 시위를 하며 유사 시 “정권 종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두려움을 안겨줌으로써 ‘나를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할 수 있죠.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현실입니다.




20여 년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에 천착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제8회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주요 저작으로 《핵과 인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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