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고마운 김정은
2024/01/11
북한이 왜 이럴까요?
정욱식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북한이 막말과 무력 시위를 동반해 수위 높은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고 남한을 향해 “주적”, “전쟁”, “초토화” 같은 표현을 썼지요. 그래서 묻게 됩니다. 북한이 왜 이러는 걸까? 저 역시 북한의 언행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몇 가지 의견을 건네고자 합니다.
먼저 ‘체제 결속’입니다. 많이들 들어보신 얘기겠지만 저는 결을 달리하는 분석을 내놓고자 합니다. 윤석열 정부와 대다수 언론 및 전문가들은 김정은 정권이 일부러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 체제 결속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최근 북한은 식량 생산과 경제 성장에서 만만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체제 결속’은 다른 관점입니다. 김정은 정권은 2018~19년 한국 문재인 정부와 미국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평화 프로세스에 나섰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기대도 상당히 컸고, 나름 성의도 보였습니다.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국인 및 미군 유해 송환,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정부 대표단에 대한 역대급 환대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은 대북 제재를 강화했고, 한국은 역대급 군비 증강에 나섰습니다. 트럼프의 약속을 어기고 한미 연합훈련도 재개했으니 김정은 정권으로선 주민들에게 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지요.
그런 시점에 적대적인 대북관을 분명히 하는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자 한미에 미련을 갖는 대신 남북 관계의 적대성을 확실히 하는 편이 체제 결속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나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줍니다. 조롱 어린 어투로 도배된 담화의 요지는 자신들을 헷갈리게 한 문재인 정부에는 ‘배신감’을, 대북 적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는 ‘고마움’을 표한 것입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는 한미 혹은 한미일의 군사 활동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대응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북한은 말로 거칠게 항의하며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를 고도화하고 핵 정책을 법제화한 후에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군사력 균형을 이룬 만큼 상대의 군사 행동에 행동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최대한 큰 두려움을 안겨줘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심사입니다. 이는 한미 동맹과 ‘데칼코마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미도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 무력 시위를 하며 유사 시 “정권 종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두려움을 안겨줌으로써 ‘나를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할 수 있죠.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현실입니다.
20여 년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에 천착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제8회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주요 저작으로 《핵과 인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 등이 있다.
@Bonnie 모순적이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상대에게 두려움을 심어줘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강대강 대결이 계속되면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가 격화되겠지요. 이전과 달라진 점은 북한이 핵무력을 법제화하기 전에는 한미연합훈련이나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에 대해 주로 말로 대응했었습니다. 하지만 핵무력 고도화와 법제화 이후에는 '군사저 균형'이룬 만큼, 군사적 맞대응을 선택하고 있지요.
@처음처럼 문재인 정부가 전작권 환수에 집착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우리의 결정권 강화, 우리 안보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자주국방 의지, 노무현 정부의 유산, 전작권을 환수해야 북한과 대등한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 등이 종합적으로 아우러져 있지요. 하지만 전작권 환수를 위한 조건, 즉 한미연합훈련 실시를 통한 한국군의 주도적 역량 검증, 대규모 군비증강을 통한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 능력 확보 등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및 남북관계와 엇박자를 크게 내고 말았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기엔 한미연합훈련도 더 세게 하고 군비증강도 계속하겠지만, 전작권을 환수하려는 의지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현 정부 임기 내에 전작권 전환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정욱식 선생님 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잘 보겠습니다.
질문주신 분들과 답변해주신 정욱식 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정욱식님의 저서를 받으실 분은 @강부원 @처음처럼 입니다.
@papa 윤석열 정부가 9.19 합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유산이라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Arete 스스로 헤쳐나가겠가는 생각이 매우 강힌 것 같습니다. 또 통일과 같은 국시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실리에 집중하겠다는 모습도 보이고요.
@강부원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북한이 핵무기값을 요구하는 시대도 지나간 것 같습니다. 핵보유 자체가 목적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김정일-김정은 양대에 걸쳐 핵전략을 사용 중입니다. 김정일 체제 시기에는 핵개발을 빌미로 우리나라와 국제 사회를 위협했고, 김정은 대에서는 핵무기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핵개발-핵실험에 몰두하는 북한의 김씨 일가는 내부 통제보다 국제 사회에 군사력을 드러내는 데 열심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지금까지 북한의 핵전략은 대외용으로 해석됐지만, 저는 오히려 북한의 핵 전략은 북한 김씨 권력이 가시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정통성 유지의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체제 붕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보입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핵무기와 장거리 발사 능력을 갖춘 미사일 기술은 북한이 국제 사회를 위협하며 자랑해온 기술적 능력입니다.
또한 핵 미사일은 북한 인민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국가 판타지 서사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미국과 동일한 수준의 미사일 능력을 갖추었다.”
“우리는 가난해도 남조선과 일본을 벌벌 떨게하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즉, 핵무기는 북한 정권의 프로파간다 장치인 동시에 인민들에게 3대 세습 권력의 정통성을 환기하는 흥행물로 기능합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핵능력 과시나 미사일 발사 실험은 국제 사회에 위협을 가한다기 보다 북한 내부 인민들의 판타지를 자극해 국가주의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로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핵 미사일은 전형적인 '극장정치'의 전략이죠. 북한은 결국 우리에게 적절한 영화푯값을 요구하고 있는 셈인데, 윤석열 정부는 아예 "극장에 들어가지 않겠다", "그 영화 더이상 재미없다"고 반응하고 있습니다. 30년 간 극장정치에만 몰두한 북한체제의 붕괴가 불러올 손해가 막대하다면, 아니, 극장이 부도났을 때 감당할 방법이 당장 마땅하지 않다면, 어느정도 할인권을 끊어서라도 일단 극장 운영은 가능하게 해주는게 현명한 대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다고 그것이 북한의 극장정치에 끌려들어가는 게 아니라, 우리 정부 나름의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대응이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모르는 바 아닐텐데 말이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값비싼 비용이 들지만, 대립과 전쟁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끔찍한 피해를 야기하니까 말이죠.
중국은 북한이라는 카드를 적절한 시기에 외교에 잘 활용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보다는 오히려 일정한 긴장감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그들 나름대로의 한반도에서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으니깐요. 세습으로 내려온 김정은 정권은 미워하더라도 북한국민에 대한 적개심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한것은 부러져도 부드러운것은 쉽게 부러지지 않는데 한국의 북한관련 정책도 강보다는 부드러운 정책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과 비교해서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김정은 리더십이 이전과 다른 점이 있는지요
북한은 김정일-김정은 양대에 걸쳐 핵전략을 사용 중입니다. 김정일 체제 시기에는 핵개발을 빌미로 우리나라와 국제 사회를 위협했고, 김정은 대에서는 핵무기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핵개발-핵실험에 몰두하는 북한의 김씨 일가는 내부 통제보다 국제 사회에 군사력을 드러내는 데 열심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지금까지 북한의 핵전략은 대외용으로 해석됐지만, 저는 오히려 북한의 핵 전략은 북한 김씨 권력이 가시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정통성 유지의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체제 붕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보입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핵무기와 장거리 발사 능력을 갖춘 미사일 기술은 북한이 국제 사회를 위협하며 자랑해온 기술적 능력입니다.
또한 핵 미사일은 북한 인민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국가 판타지 서사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미국과 동일한 수준의 미사일 능력을 갖추었다.”
“우리는 가난해도 남조선과 일본을 벌벌 떨게하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즉, 핵무기는 북한 정권의 프로파간다 장치인 동시에 인민들에게 3대 세습 권력의 정통성을 환기하는 흥행물로 기능합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핵능력 과시나 미사일 발사 실험은 국제 사회에 위협을 가한다기 보다 북한 내부 인민들의 판타지를 자극해 국가주의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로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핵 미사일은 전형적인 '극장정치'의 전략이죠. 북한은 결국 우리에게 적절한 영화푯값을 요구하고 있는 셈인데, 윤석열 정부는 아예 "극장에 들어가지 않겠다", "그 영화 더이상 재미없다"고 반응하고 있습니다. 30년 간 극장정치에만 몰두한 북한체제의 붕괴가 불러올 손해가 막대하다면, 아니, 극장이 부도났을 때 감당할 방법이 당장 마땅하지 않다면, 어느정도 할인권을 끊어서라도 일단 극장 운영은 가능하게 해주는게 현명한 대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다고 그것이 북한의 극장정치에 끌려들어가는 게 아니라, 우리 정부 나름의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대응이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모르는 바 아닐텐데 말이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값비싼 비용이 들지만, 대립과 전쟁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끔찍한 피해를 야기하니까 말이죠.
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지닌 목표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북한을 비핵화시키는 게 우선인지, 미국이 중국이랑 경쟁하면서 그래도 나름 무기를 지닌 북한이 중국에 결속하는 걸 방지하는 것인지, 북한 길들이기인지, 아니면 아예 북한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닌지 등등요.
질문주신 분들과 답변해주신 정욱식 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정욱식님의 저서를 받으실 분은 @강부원 @처음처럼 입니다.
@강부원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북한이 핵무기값을 요구하는 시대도 지나간 것 같습니다. 핵보유 자체가 목적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북한이라는 카드를 적절한 시기에 외교에 잘 활용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보다는 오히려 일정한 긴장감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그들 나름대로의 한반도에서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으니깐요. 세습으로 내려온 김정은 정권은 미워하더라도 북한국민에 대한 적개심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한것은 부러져도 부드러운것은 쉽게 부러지지 않는데 한국의 북한관련 정책도 강보다는 부드러운 정책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과 비교해서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김정은 리더십이 이전과 다른 점이 있는지요
@정욱식 빵점짜리 윤석열 정부에게 기대하기엔 너무 거리가 있는 연설문이지만,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문제를 풀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는 연설문입니다 ㅎㅎ
저의 질문에서 '전시작전권 환수'가 왜 문재인 정부에게 그토록 중요했는지에 대해서 답을 주신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전시작전권 환수는 주권국가의 기본 같은 것이여서 당연한 것이지만,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해서는 군비증강과 연합훈련 지속이 필요요소다. 군비증강과 연합훈련을 지속하면 남북관계가 나빠진다.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한반도비핵화 및 평화는 멀어진다... 는 것인데요.
작가님 제안처럼 우선적인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비핵지대를 만들면 전쟁위험이 현저히 줄어드니 전시작전권 환수가 급하지 않은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반대로 전시작전권 환수에는 관심 없을 것 같은 윤석열 정부는 연합훈련의 확대 및 한미 군사동맹에 군비증가까지 계획하고 있고, 평화체제는 원하지도 않으니 전시작전권을 환수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 제가 모르는 어떤 정치함수가 있을까요?
@papa 9.19 군사합의의 백지화 과정을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강대강 대결이 여지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합의 파기 행위는 분명 규탄받아 마땅합니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위성발사에 대한 보복조치로 이 합의의 일부 조항을 효력정지시킨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남북 양측이 모두 자제하면 좋겠지만, 저는 윤 정부가 먼저 자제하면서 상황 변화를 꾀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 될 거라고 여깁니다. 북한이 아무러 발버둥쳐도 한미동맹이 더 강하니까요.
@삶은계란 남북 당국이 싸우면서 닮아가고 있습니다. 철부지처럼 말이죠. 중재가 필요한데, 마땅한 중재자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그래도 미국이 한국의 과잉행동을, 중국은 북한의 과잉행동에 우려를 표하면서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중국 지인들에게 중국이 나서서 4자회담이나 6자회담을 추진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직 성과는 없지만 말이죠.ㅜㅜ
919 군사합의에 대해서 먼저 효력이 없다고 한 것은 우리 정부라고 하면서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면 파기를 선언했죠. 이번 북한의 도발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지는데, 사실상 북한이 계속 합의를 어겨온것 아닌가요? 상대방이 지키지 않는 약속을 우리만 지키는 것은 바보짓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