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상조’란 말과 싸운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 이태영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4/25
이태영. 출처-한국여성민우회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李兌榮, 1914~1998)
   
세상의 온갖 시기상조

1865년 흑인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외침에 미국 남부 농장주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다. 1928년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영국의 신사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찬성하지 않았다. 1945년 식민지 조선이 해방되었을 때, 미국과 소련은 한국의 독립국가 건설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군정을 실시했다. 1979년 전두환 신군부는 유신정권 이후 권력의 민정 이양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2003년 한국에서 최초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려 했을 때, 많은 경제전문가와 사용자 연합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나라가 망할 것처럼 걱정했다. 2010년 학생에게 물리적 체벌을 금지하자는 법안을 발의하려 했을 때, 일선 학교의 교사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반발했다. 

2020년 일본계 여성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Fujita Sayuri)가 자발적 비혼 출산 소식을 전했을 때도, 한국에서는 비혼 여성에게 시험관 수정 출산 권한을 주는 것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이처럼 ‘세상의 온갖 시기상조’들은 돌이켜 보면 대개 쓸데없는 걱정이거나, 자신의 이득과 권한을 잃게 될 것을 염려하는 기득권의 마지막 발버둥이기도 하다. 
여성들에게 법률 상담을 해주고 있는 이태영의 모습. 출처-한국가정법률상담소
   
자의반 타의반으로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되다
   
이태영(李兌榮, 1914~1998)은 평생을 ‘시기상조’와 싸워온 여성 법조인이다. 1946년 33살 늦깎이로 서울대 최초의 여대생으로 입학하고, 1949년 최초의 여성 법대생으로 졸업 한 뒤, 1952년 최초의 여성 사법고시 합격자가 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여성판사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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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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