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무간도 -최종길 교수 사건 50주기를 맞아.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10/21
우리 시대의 무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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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라는 홍콩 영화가 있다. 신분을 감추고 범죄 조직에 잠입해 오랫동안 일원으로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경찰과, 반대로 범죄 조직의 일원이지만 경찰에 침투해 정보를 캐내는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다.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황당하기도 하다. 영화로 만든다면 허황되다고 손을 내저을 이야기도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 <무간도> 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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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바로 전 해인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을 선포한다. 대통령 직선제가 폐지됐고 연임 제한을 없애서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대통령에 앉을 수 있게 했으며,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는가 하면, 헌법도 무시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내릴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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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사법·행정 3부 위에 군림하면서 헌법 같은 건 모르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고 그 권력을 평생 누릴 수 있는 자리. 이게 뭘까? 다름아닌 왕(王)이라 할 것이다. ‘짐이 국가다’는 정도의 정신 세계가 아닌 이상, 민주주의 국가와 이런 절대권력은 결코 어울리지 않으며, 어울릴 수도 없다. 유신 체제의 독랄한 군홧발이 국민을 짓눌렀지만 저항의 목소리는 계속 터져 나왔다. 1973년 10월2일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 일어난 유신 반대 시위는 물꼬를 튼 사건이었다. 이 시위는 서울 법대, 상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으로 번져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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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 무렵 서울대 법과대학에 최종길이라는 교수가 있었다. 독일 유학생 출신으로 인천이 낳은 천재 소리를 들었던 이 영민한 교수는 학생들이 흠씬 두들겨 맞고 끌려가는 것을 보고 교수회의에서 이런 발언을 털어놓는다.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합니다.” 학교에 정보기관 요원들이 상주하던 시절이었으니 이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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