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억압을 유지하는 가족구조 - <쇼코의 미소> 깊이 읽기(2)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03/16
최은영, <쇼코의 미소>
3. 정서적 억압을 유지하는 가족구조 
   
이 소설은 정서적인 교감과 유대만을 다루고 있는 소설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는 주요 인물들의 정서를 억압하는 여러 가족 구조들이 내재되어 있다. 실제로 소유네 가족 내에는 표출되지 못한 여러 슬픔의 정서들이 존재하지만, 소유 엄마와 소유 할아버지 모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혹은 개념화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정서 억압은 유사 가부장제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해 볼 수 있다. 

먼저, 소유의 가족은 가부장의 부재, 즉 아버지의 죽음으로 전형적인 핵가족의 형태에서 이탈한 것처럼 보이지만 할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일종의 유사 가부장제의 모습을 취하게 된다. 할아버지의 가부장성은 항상 TV앞에 앉아 리모컨을 쥐고, 자신이 채널을 돌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다거나 소유에게 물을 떠오라고 시키는 등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혹은 소유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걱정하는 모습에서도 그의 가부장적인 면모를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대체로 소유의 엄마에게 간섭받지 않으며 용인된다. 그런 점에서만 보면 할아버지라는 이전 세대의 가부장으로 인해 전형적인 가부장제가 유지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소유의 가족 구조를 전형적인 가부장제가 아닌 유사 가부장제라고 칭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설명한 할아버지라는 가부장의 권위가 실제로는 과거의 잔재처럼 매우 미약하게나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집안의 실제적 가장은 소유의 엄마다. 엄마는 유일하게 가족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인물로 실질적인 경제적 결정권을 점유한다. 

때문에 할아버지의 가부장성은 어디까지나 그 가부장성을 보고 자란 소유의 엄마가 용인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며 실제적인 가정 내 의사결정과는 무관한 영역에서만 간신히 작동할 수 있다. 사실, 실제적인 권위가 없음에도 할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가 미약하게나마 표현되는 이유는 그가 소유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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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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