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 :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른 잡초 한 포기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2/18

친애하는 블로그 이웃이자 페미니스트 친구 J 님이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던 것도 잠시, 어느새 대화의 흐름은 ‘망해버린 시대에 대한 고찰’로 바뀌었다. J 님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매일 보수화되어 가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며,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멸망이 확정됐다는 말을 되풀이하게 된다고,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날 것 그대로의 심경을 들은 나는 일시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혀 조금 머뭇거렸다. 비단 J 님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오랜 친구 K 언니도 ‘아무래도 우리 세대가 끝인 것 같다’라고 말했었다. 사회학자들 중에서도 장밋빛 미래를 예견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세대는 희망 없는 시대를 건너고 있다. 선명한 절망과 투명한 폭력의 시대. 사회 문제를 진단할 순 있지만 변화의 기반은 취약한 시대. 혐오 범죄, 합법적인 차별, 빈곤, 독자생존, 약육강식, 자살, 전쟁, 기후위기, 공장식 축산, 고실업률, 출생률 0.7%의 비극이 난무하는 세상을 등한시한 채, 밝고 희망찬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다 망했다며 자조하거나 이대로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머릿속에 흩어진 생각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망가진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윈 없어요. 그런데 뭐랄까... 희망이 없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정말 이번 세대가 끝이라면 인류의 마지막 유산으로 혐오와 폭력이 아닌 사랑을 남기고 싶어서요.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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