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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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질환 치료, 미생물의 ‘메시지’에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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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에디터 노트
장내 미생물,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지식이 널리 퍼지면서, 이제 장내 미생물이 건강과 질병 치료, 예방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질병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질병마다, 지역과 인종,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생균 기반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질병 예방, 치료를 위한 매우 유력한 후보 수단이지만, 거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안정성을 확보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차세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무엇일까요. 미생물의 대사체를 이용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고아라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가 최신 동향을 설명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장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과, 그 유전 정보의 집합체를 말한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우리 몸의 다른 부위에도 있지만 장 내에 가장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는 장 건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파킨슨병, 우울증, 치매 같은 뇌질환, 피부와 폐 질환, 그리고 당뇨나 비만 같은 전신 질환과도 관련이 있다 [1]. 예를 들어, 유전적으로 동일한 쌍둥이 중 한 명이 비만이고 다른 한 명이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들의 장내 미생물을 각각 미생물이 없는 생쥐에게 이식한 실험이 있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비만인 쌍둥이의 미생물을 이식받은 생쥐는 뚱뚱해졌고, 마른 쌍둥이의 미생물을 이식받은 생쥐는 그렇지 않았다 [2].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유전적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체 질환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 1).
[그림 1] 유전적으로 동일한 쌍둥이가 있다. 이 가운데 한 명만 비만일 경우, 이들 각각의 장내미생물을 쥐에게 이식하면 비만인 쌍둥이의 미생물을 이식받은 생쥐만 뚱뚱해진다. 신인철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불균형 복구해 질환 치료할 수 있을까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이 질환을 유발한다면, 건강한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하는 '분변 마이크로바이옴 이식(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으로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특히,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rCDI, recurrent Clostridioides difficile infection)에 의한 장염치료에서 FMT는 성공률이 약 90%에 달할 정도로 큰 효과를 보였다. 이로 인해 FMT를 다른 질환 치료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1]. 그러나 대사질환과 같은 만성 질환에서는 FMT의 효과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났고, 치료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3]. 또, 분변 제공자와 이식받는 사람에 대한 기준이 질환마다 일관되지 않아, 이는 FMT를 활용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그림 2).
 
[그림 2]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분변 이식과 프로바이오틱스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다. 대사체는 치료 효과를 매개하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 저자 제공.


질환에서 감소한 미생물을 보충하면 치료 가능?

당뇨와 같은 만성 대사질환 환자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한 결과, 정상 혈당을 가진 사람에 비해 특정 미생물이 감소하거나 사라진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미생물을 프로바이오틱스처럼 보충하면 질환 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스웨덴과 중국에서 각각 진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모든 당뇨 환자에게서 공통적으로 감소하는 특정한 미생물을 찾기는 어렵다 [4, 5].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조성이 지리적, 인종적 차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또, 장내 미생물이 다양한 종으로 구성돼 있어 서로 다른 미생물이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능적 중복(functional redundancy)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 따라서, 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단순히 감소한 미생물을 보충하기보다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감소한 미생물의 역할을 복구하는 접근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장내 환경이 사람마다 다르고 질환마다 다르기 때문에, 보충하려는 유익균이 장내에서 정착하고 생존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염증이 심한 상황에서는 유익균이 장내 환경에 잘 정착하지 못하고 쉽게 제거될 가능성이 높다 (그림 2). 이처럼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치료는 개별 환자의 장내 환경을 고려해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누가 존재하느냐 vs. 무엇을 얼마나 하느냐

기존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특정 미생물이 존재하는지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미생물의 대사활성, 즉 무엇을 얼마나 하느냐에 대한 연구가 중요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1차 담즙산(bile acids)은 간에서 콜레스테롤로부터 생성되고, 1차 담즙산은 장에 있는 미생물에 의해 변형되어 2차 담즙산을 생성한다. 이러한 담즙산은 지질의 체내흡수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에너지의 소비와 항상성 유지, 염증조절에도 역할을 한다. 이러한 2차 담즙산은 대장에서 높은 농도로 발견되지만, 이를 생성할 수 있는 미생물은 다른 미생물의 약 100만 분의 1 수준으로 적게 존재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런 미생물이 기존 탐지 방법으로는 확인되지 않더라도, 실제로 2차 담즙산을 활발히 생성한다는 점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그림 3).
[그림 3] 2차 담즙산은 대장에서 높은 농도로 발견되지만, 이를 생성할 수 있는 미생물은 다른 미생물의 약 100만 분의 1 수준으로 적게 존재한다. 신인철

이 사례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서 단순히 특정 미생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그 미생물이 얼마나 활발히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특정 미생물의 존재를 넘어 이들의 대사 기능과 활성 수준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인간 건강과 질환에 대한 마이크로바이옴의 영향을 보다 정확히 규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치료법 개발에 기여할 것이다.
 
 

미생물 대사체와 그 역할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 유전자보다 100~1000배 많은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숙주의 건강과 질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1]. 

  • 식이섬유 대사: 인간은 스스로 식이섬유를 분해할 효소가 없지만,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이를 분해해 단쇄지방산(SCFAs, Short chain fatty acids)인 아세테이트, 프로피오네이트, 부티레이트를 생성한다. 이런 대사체는 세포 신호 전달 과정에 관여하며, 식이섬유의 건강 증진 효과를 매개한다 [6] (그림 4).
  • 담즙산 변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지방 소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1차 담즙산을 2차 담즙산으로 변환해 숙주 생리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1] (그림 3).
  • 아미노산 대사: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은 인돌로, 타이로신은 크레솔로, 페닐알라닌은 페닐아세트산으로 변환된다. 일부 대사체는 숙주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일부는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1] (그림 4).
  • 폴리페놀 대사: 폴리페놀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거나 변형돼 효과가 감소하거나 증진될 수 있다 [1]. 

[그림 4]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이 갖고 있지 않은 화학대사 능력을 활용해 식이섬유, 아미노산, 담즙산, 약물 등을 변형시키며, 이는 인간의 건강과 질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저자 제공.


특히,아미노산 유래 미생물 대사체는 체내에서 잘 흡수되고 전신 순환을 통해 장 밖의 조직과 기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효과가 국소적인 장 건강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대사 산물인 미생물 대사체는 우리 몸의 건강과 질환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대사체를 심층적으로 이해한다면, 이를 활용해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약물 효능에 미치는 영향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보다 훨씬 방대한 유전정보와 대사활성을 통해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의 효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약물을 변형하거나 대사함으로써 약물 효과를 강화하거나 저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7] (그림 4, 5). 
[그림 5]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의 효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약물을 변형하거나 대사함으로써 약물 효과를 강화하거나 저해할 수 있다. 신인철


예를 들어, 화학항암제로 사용되는 젬시타빈(gemcitabine)은 특정 장내 미생물 효소에 의해 불활성화돼 약물에 대한 저항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혈관계 치료제인 디곡신(digoxin)은 장내 미생물 효소가 이를 불활성화시켜 약물 반응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levodopa)는 장내 미생물에 의해 변형돼 뇌로 전달되는 치료제의 양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는 치료 효과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면역항암제는 뛰어난 효능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들에게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됐다. 면역항암제의 효능을 매개하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다소 일관성이 없지만, 최근에는 이노신(inosine), 디사미노티로신(desaminotyrosine), 인돌-3-알데하이드(indole-3-aldehyde)와 같은 미생물 대사체가 치료 효과를 매개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8].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의 핵심 축, 마이크로바이옴 대사체

마이크로바이옴 대사체는 생균 기반 치료제보다 안정성이 높고, 환자 특이적 장내 환경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차세대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대사활성과 이를 통해 생성되는 대사체를 이해하는 것은 약물 치료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개인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물론,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으로 발생한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마이크로바이옴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생물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밝히고, 호스트 환경 변화에 따른 미생물 대사 능력의 적응을 이해하며, 마이크로바이옴 기능 복구를 위한 최적의 접근법을 규명하기 위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마이크로바이옴 대사체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의 중심 축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이크로바이옴 대사체는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 직접 활용될 수 있으며, 복잡한 장내 생태계를 직접 조작하지 않고도 원하는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림 2).



글  고아라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그림 신인철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시리즈 기획 김규원 서울대 명예교수, 이공주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편집 윤신영 alookso 에디터
더 나은 지식기반 사회를 향한 과학자·전문가 단체입니다. 상호 교류를 통해 지식을 집산·축적하는 집단지혜를 추구합니다. alookso와 네이버를 통해 매주 신종 감염병, 기후위기, 탄소중립, 마이크로비옴을 상세 해설하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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