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공지의 무용함에 관하여 _ 강남 모 중학교 칼부림 사건으로 촉발된 생각

송선형
송선형 인증된 계정 · 가론. 삼남매 엄마이자 사업가
2023/04/20
며칠 전 강남의 모 중학교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당사자(특히 피해자)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이 사건이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주요 원인이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교폭력+스토킹의 형태에 대해 무척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정식 학폭위 사건 피해 여학생의 엄마로서, 이 사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https://youtu.be/qFOzACe8uDI
(뻔하고 겉핥기인 뉴스보다 조금 더 심층적으로 다룬 클립으로 가져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해자가 죽어서 수사조차 하지 않을 사건이겠지요.
그러나 이런 유사한 사건은 분명히 또 다른 곳에서 발생할 겁니다. '분명히'라는 단어를 쓰기 미안하지만 저는 감히 확신합니다.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자녀가 중학생이면 부모의 책임이 조금은 희석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몰랐다'라는 반응에 딱히 반박하기도 힘듭니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몰랐다고, 이런 끔찍한 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미 유족들은 그 나름의 피해자가 된 것도 모르지 않습니다만, 할 말은 하겠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고 집값도 높다는 동네에 거주하는 부모조차 자녀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합니다. 아마 전국 방방곡곡에서 통계를 내 보아도, 자녀가 가해자가 되도록 방치하는 부모들이, 자녀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챙기는 부모보다 숫적으로 훨씬 많을 것 같습니다. (연구자들이 이런 통계를 내 주면 좋겠습니다.)

아마 도곡동 모 중학교 학부모이거나, 도곡동의 모 아파트(사실 어딘지는 이미 전국 학부모들 사이에 훤히 소문났습니다만 이 글에서 적시하진 않겠습니다) 거주하는 중학생 학부모 중, '내 자녀가 학폭위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녀를 살피고 교육하는 부모가 과연 10%나 될까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그렇게 교육하고 있는데, 정말로 애가 학폭위 가해자가 되어서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2학기 내내 괴롭힌 가해자가 제 아이한테 맞학폭위 걸어서요. 이 얘긴 이 글의 논점과는 거리가 멀고 지난 글들에서 수차례 언급했으므로 생략합니다)

사건 다음날 해당 중학교(금방 어딘지 소문나서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홈페이지에 가 봤습니다.
4월 5일 공지사항에 학교폭력 및 생활규정 안내문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강남 모 중학교 4월 5일 공지사항 내 첨부파일 직접 캡처

이 공지가 올라온지 불과 2주 후 이 학교에서는 칼부림 사건이 일어납니다. 칼부림 전에 자신과 만나자고 했다는 뉴스도 있고, 피해 학생이 그 때문에 조퇴를 했다는 뉴스까지 보았습니다.

해당 사건에 대한 호기심은 당사자들을 위해 거두는 것이 맞습니다만, 이 사건이 '그냥 어쩌다 일어난 일', '재수없어 생긴 일' 정도로 가볍게 치부되고 언급 금지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이런 류의 사건이 또 일어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눈 감고 귀 막을 겁니다.
지금도 각 학교마다 이런 공지는 유사하게 올라오고 있지만 그뿐일 겁니다. 참으로 무용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통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무력한 한 개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얼룩소에 게재하는 학교 폭력 관련 글에서 주야장천 주장해왔듯이 뭐라도 얘기해야 초석이라도 될 것이라 믿고 쓰는 겁니다.
적어도 이 사건을 특별한 예외로 치부하고 가볍게 넘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겁니다. 미성년자를 탓하기 이전에 어른들이 정신차려야 합니다.


학생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학부모나 보호자에게 학교 폭력 + 학교 생활 전반 예절에 관련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공지사항으로 대충 때우려고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일 뿐더러 효과도 전혀 없습니다. 

저로서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봤자 현장에 적용될 가능성이 없다보니, 일단은 이렇게 무책임하게 흔들기만 하는 글이라도 올려봅니다. 그러다보면 뭐라도 달라지는 게 있기를 바라면서요.


초/중/고 재학중인 삼남매를 키우며 화장품 유통 사업과 작은 연구소를 운영 중입니다. 강의와 글 생산 노동을 포기하지 못하여 프로N잡러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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