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구분할 수 있겠나.”– 어느 정보요원의 긴 생애 짧은 이야기 2
2024/02/13
“빨갱이 구분할 수 있겠나.”– 어느 정보요원의 긴 생애 짧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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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 포스팅은 2022년 세상을 떠나신 큰아버지가 단 하루 동안, 평생 처음으로 입밖에 냈던 본인의 일생 이야기를 사촌동생이 다급하게 메모한 A4 넉 장 분량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본인의 회고에 어느 정도의 상상과 설명을 추가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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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철수는 비참했다. 2차대전 당시 덩케르크 철수 같은 상황이었다. 사기충천 북으로 향하던 국군과 UN군운 넋나간 모습으로 후퇴해 왔고, 중공군과 북한군은 아군의 퇴로마저 막아 버렸다. 남쪽 원산에 있던 미군들마저 되레 북쪽 흥남부두로 집결하는 판이었다. 오로지 탈출구는 바다였다. 덩케르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덩케르크에는 철수시켜야 할 군인들만 있었지만, 흥남에는 수십만의 피난민들이 울부짖고 있었다는 것이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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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었을 때, 즉 조선인민공화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내 조국이 변신했던 그 짧은 기간,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목사에다 교회 사람들과 함께 국군을 도운 이력이 분명했기에 인민군이 다시 들어온다면 틀림없는 죽은 목숨이었다. 어떻게든 배를 타야 했다. 아버지는 안면 익힌 군인을 통해 가족들 자리를 주선받았는데 그 가족 자리를 다른 목사들, 즉 남으면 반드시 총살될만한 이들에게 양보했다.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이니 죽이기야 하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만은 배에 태웠다. “장손은 살아남아야 한다.” 내 나이가 열 여섯이니 인민군에 끌려가거나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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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버지는 또 배에서 내렸다. 남은 가족들이 눈에 밟혀 어쩔 줄을 모르다가 끝내 나를 두고 배에서 내려가셨다. “살아라. 살아남아라 살아서 보자.”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가겠노라고 했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결국 나는 배에 혼자 남아야 했다. 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눈물이 치받는 것...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