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댄서
서툰댄서 · 네트워크를 꿈꾸는 자발적 실업자
2024/04/22
앞에서 한 이야기들의 연장선 상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내용들과 더불어 상상을 포함한 느슨한 대안들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하면서 이번 연재글을 마치고자 한다. 
 
내가 반복해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합리성이라는 것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가치이긴 하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유와 평등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이지만 완전한 수준으로 구현되는 것이 불가능하고 다른 가치들을 침해하는 측면도 있는 것처럼, 완전히 합리적인 사회란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공적인 차원에서든 완벽하게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역시 완성된 이념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이 시민 전체에게 있다는 원리만 확인할 뿐, 공적인 사안들에 대해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만한 지식도 자원도 부족한 일반 시민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고 적절한 공적 의사결정을 내리게 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정된 지식들을 제공하지 못한다. 입법, 행정, 사법, 정당, 언론, 시민단체 등 사회의 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의사결정과 이를 둘러싼 숙의의 정당하고 효과적인 방식이 무엇인지는 제도와 규범 측면에서 계속 논의와 숙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주장과 의견들이 궁극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확정할 수 없는 믿음과 직관에 일부라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이 별 의미가 없다거나, 판단을 유보하면서 실천을 미루거나, 양쪽 말이 다 일리가 있다면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것과 같은 회피적인 태도들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았다.
존 부어맨 감독의 ‘원탁의 기사’라는 영화의 초반부엔 젊은 아서가 브리튼의 통일을 위해 이웃 영주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상대 영주를 제압하긴 했지만 그는 기사도 아닌 사람에게 굴복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아서는 영주에게 자기의 칼을 건네며 자신의 어깨를 칼등으로 두들겨 기사로 임명해 달라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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