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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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미생물 조절했더니 숨쉬기가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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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우리 몸에는 무려 수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기생자가 아니라, 우리의 건강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파트너다. 대부분의 미생물은 장에 서식하며 소화 작용을 돕고, 비타민과 같은 영양소를 생성하며, 면역 체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장내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지면 다양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예전에는 미생물을 연구할 때 주로 배양이 가능한 병원균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배양되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을 유전자 분석을 통해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다양한 미생물 군집을 연구하는 분야를 마이크로바이옴이라 부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몸이 수많은 유익균과 공생하고 있음을 알게 됐고, 다양한 질병과 미생물 간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연구도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통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장은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미생물을 보유하고 있다. 한 사람의 장내미생물 무게만 해도 약 2 kg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장내미생물은 전신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폐는 어떨까. 장과 폐는 서로 떨어져 있는 장기이지만, 장내미생물이 호흡기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런 연구는 '장-폐 축(gut-lung axis)'이라는 개념을 통해 장과 폐의 상호작용을 설명한다. 이 개념과 관련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점점 더 많이 쌓이고 있다[1].


호흡기 질환에도 미생물의 영향이?

흡연은 여러 호흡기 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이 대표적이다. COPD에는 폐가 빨리 노화하고 폐포가 파괴되는 폐기종(emphysema)과, 기도가 좁아지고 가래가 과다하게 생성되는 만성 기관지염이 포함된다. 이 질환이 심해지면, 마치 빨대를 물고 숨 쉬는 것처럼 숨이 차고 힘들어진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5대 비전염성 질환 가운데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환자는 숨이 차고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현재까지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어 주로 증상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흡연이 호흡기 질환의 주요 원인임에도 사람마다 흡연에 대한 반응은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오랜 기간 담배를 피워도 멀쩡한 반면, 어떤 사람은 폐가 망가져 숨쉬기조차 어려워한다. 이런 차이는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그리고 식습관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면 폐 기능이 상대적으로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2]. 호흡기 질환과 식이 요법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최근에는 COPD와 같은 호흡기 질환과 장내미생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흡연자는 일반적으로 장내미생물의 다양성은 감소하고, 특정 유해균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변화는 장내 염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것이 전신 염증 반응으로 이어져 폐와 같은 다른 기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필자를 포함한 여러 연구 그룹은 COPD 환자와 건강한 흡연자 사이에 장내미생물 군집과 대사 산물이 뚜렷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건강한 흡연자는 장내에 더 많은 유익균과, 이들 유익균이 만들어내는 항염증 물질인 단쇄지방산(SCFA, Short chain fatty acid)이 많았다. 이는 폐 기능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3, 4]. 반면, COPD 환자는 이런 유익균이 줄었고, 염증을 유발하는 미생물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림 1). 
[그림 1] COPD 환자와 건강한 흡연자 사이에 장내미생물 군집과 대사 산물이 뚜렷하게 다르다. 건강한 흡연자는 장내에 더 많은 유익균과, 이들 유익균이 만들어내는 항염증 물질인 단쇄지방산(SCFA)이 많다. 신인철


이런 발견은 장내 유익균이 식이섬유를 통해 단쇄지방산 같은 유익한 대사물질을 만들어내, 흡연 등 유해한 물질로부터 폐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을 시사한다. 
 
 

치료에 이용할 수 있을까

단쇄지방산은 장내미생물이 식이섬유를 발효해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대사 산물로, 탄소 수가 6개 이하로 적은 지방산을 의미한다. 과일 등이 발효 혹은 부패할 때 시큼한 맛을 내는, 식초의 주성분이 되는 아세테이트(acetate, 탄소 수 2개)도 그 중 하나다. 그 외에 프로피오네이트(propionate, 탄소 수 3개), 부티레이트(butyrate, 탄소 수 4개)가 있다. 
 
단쇄지방산은 대장 세포 및 여러 면역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이며 장내 pH를 낮춰 유해균의 성장을 억제한다. 장벽을 강화해 염증을 줄이는 등 다양한 생리적 역할도 한다. 필자의 연구팀은 아세테이트와 프로피오네이트가 면역 조절 및 염증 억제 작용을 통해 폐의 염증 반응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단쇄지방산을 동물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보충해주자 흡연에 의한 폐 손상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그림 2). 이를 통해 장내 유익균이 생성하는 여러 대사물이 폐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게 됐다[3].
[그림 2] 단쇄지방산은 장내미생물이 식이섬유를 발효해 만드는 대표적인 대사 산물이다. 대장 세포 및 여러 면역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이며 장내 pH를 낮춰 유해균의 성장을 억제한다. 신인철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는 것도 단쇄지방산의 생산을 촉진해 폐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식이섬유 섭취가 많은 사람은 COPD의 발병 위험이 낮다. 이는 장내미생물 군집의 건강한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COPD 환자에게 적절한 식이 요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4].
 
이런 발견을 통해 '좋은 식사(섬유질) - 좋은 장내미생물 - 좋은 대사물질 - 좋은 폐 기능'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축이 형성됨을 알 수 있다. 이는 만성 호흡기 질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열어준다.
 
 

장내미생물 조절을 통한 새로운 치료

마이크로바이옴 조절은 기존 치료법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다. 장내미생물을 조절하는 방법으로는 프로바이오틱스(유익균 자체), 프리바이오틱스(유익균의 성장을 돕는 영양소), 그리고 포스트바이오틱스(단쇄지방산처럼 유익균이 생성하는 물질)를 통해 장내미생물 균형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를 통해 폐 질환의 진행을 늦추거나 호전시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 외에도 분변 이식을 통해 건강한 사람의 장내미생물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항생제에 의한 장염 등에서 효과를 입증해 일부 소화기 감염 질환에서는 실제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필자의 실험실에서는 호흡기 질환에 이 방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동물모델 연구에서 건강한 쥐의 분변을 이식해 흡연에 의한 폐 손상을 호전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5] (그림 3).
[그림 3] 분변 이식은 건강한 사람의 장내미생물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이다. 소화기 감염 질환에 적용되고 있다. 쥐 실험을 통해 분변 이식이 폐 손상을 호전시킬 수 있음도 확인했다. 신인철


호흡기 질환 치료에 팔 걷고 나선 마이크로바이옴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COPD 치료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가 COPD의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대규모 임상 연구를 통해 이 접근법의 안전성과 효과도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법은 COPD와 같은 난치성 호흡기 질환 치료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이 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COPD 사이의 관계를 더욱 명확히 밝혀, 보다 정밀한 개인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할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COPD뿐만 아니라 다양한 만성 질환, 심지어 정신 건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현대 의학이 기존의 질병 중심적 접근에서 벗어나, 인체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보는 통합적 시각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개인화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각 개인의 마이크로바이옴은 고유하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치료법이 기존의 일률적인 치료법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이는 미래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흐름이다.
 
 

난치성 질환 환자에게 희망이 되길

마이크로바이옴과 COPD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호흡기 질환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장내미생물이 만드는 단쇄지방산 등 대사 산물이 COPD의 예방과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향후 더 많은 연구와 임상 실험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치료법이 개발되길, 이를 통해 난치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기길 기대한다.


글    이세원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그림 신인철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시리즈 기획 김규원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이공주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편집 윤신영 alookso 에디터
더 나은 지식기반 사회를 향한 과학자·전문가 단체입니다. 상호 교류를 통해 지식을 집산·축적하는 집단지혜를 추구합니다. alookso와 네이버를 통해 매주 신종 감염병, 기후위기, 탄소중립, 마이크로비옴을 상세 해설하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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