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에 관한 이야기
2021/11/19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
2011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교보문고에서 신간 코너를 뒤적이다 우연히 책 한권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에는 가벼운 수필에 일러스트를 더한 책들이 유행이었는데, 이 책은 치밀할 정도로 꼼꼼하게 묘사된 일러스트와 빈틈없이 적혀있는 역사적 사실때문인지 주목받는 책 코너가 아닌 철 지난 신간 코너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라는 다소 진부해 보이는 제목과 차분한 일러스트가 왜 내 마음을 끌었는지는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그저 이 책은 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저없이 초판 1쇄를 결제했다.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다시 사고를 반복하며 한 동안은 산책을 나갈 때마다 이 책을 들고 보면서 걸어다닐 정도로 빠져 살았었다. 내가 주로 다니는 서대문, 종로, 중구에는 비석이 아주 많았고, 저자는 비석을 꼼꼼하게 책 속에 그려놓고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짧은 거리 이동에도 몇 번씩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었다.
thou thy worldly task hast done, Home hast gone and ta'en thy wages.
그대여, 그대는 이 세상의 일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보상을 받았다.
나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이 글은 셰익스피어가 죽음의 평안함을 이야기한 <노래song>라는 시의 한 구절이었다. 글을 수첩에 옮겨 적고 나는 한동안 그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이상향, 그 단어 하나를 매개로, 이미 끝을 맺은 이상향과 아직 진행 중인 이상향이 서로 마주 하고 있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이장희 글 그림/지식노마드]
그리고 2019년, 50년 남짓의 역사를 가진 시장통의 어느 작은 골목에, 아주 오래된 한옥을 개보수하여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란 이름의 책방이 생겼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방문했는데 정말로 이장희 작가님을 만나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