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자격] 생산적으로 살아라?...성실하지 않은 청년들의 구직 활동(2)
2023/03/22
* 이 글은 4월 출간 예정인 『일할 자격』의 <1장. 생산적으로 살아라?_성실하지 않은 청년들의 구직 활동> 일부 내용입니다.
#성실한/나태한 #생산적인/쓸모없는 #열정적인/의지박약한
이번에는 일하고 있어도 일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다. 정빈은 대학 졸업 후 방과후교사로 일하며 카페 아르바이트를 3년 이상 병행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너무 성실한데? 이 사람이 인터뷰 컨셉에 맞는지를 의심하고 있는데, 정빈은 ‘성실하지 않은 청년’을 찾는다는 내 말에 “느낌이 딱 왔다”고 했다.
“그거 뭔지 알아요. 노력하지 않는 거. 열심히 사는데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거. 엄마나 아빠, 어른들 눈에는 제가 열심히 살지 않는 거예요. 못마땅한 거죠. 제가 아침에 출근하고 이런 게 아니니까. 부모님은 저만 보면 가만있지 말고 뭐라도 하라고.”
늘 듣는 이야기는 “취업은 언제 하니?”. 정빈은 일을 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하게 된 방과후교사가 자신의 종착지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란 평가는 억울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저희 아빠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뭐라도 해라. 생산적으로 살아라.”
직접적인 표현이라, 재미있어 물었다.
“생산적으로 살아라? 그건 무슨 의미일까요?”
“몰라요. 평생 들어도 모르겠어요.”
부모님 눈에 정빈의 ‘열심’은 생산적이지 않았다. 정빈과 부모님의 ‘생산성’은 내내 엇갈렸다. 그는 다이어트를 하는 대신 인문학 서적을 읽었고, 토익 학원에 다니는 대신 독서 모임을 찾았다. 취업에 도움 되는 일은 아니었다. 정빈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행동할수록 점점 ‘생산적’이라는 평과 멀어졌다.
그러나 ‘쓸모없다’는 평을 들으며 웃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빈은 자신이 원하는 일과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일,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 정빈이 개발자 양성 과정을 수강하자 부모님의 훈계는 뚝 그쳤다. 어쩌면 이 가족 중 부모님 쪽이 조금 더 ‘요즘 사람’이겠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은 준비나 예비 시간이 아니다. 노동 능력을 증대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투자의 시간’이다. 이 시기는 미래의 소득을 위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경제행위의 일환이 된다.
그런데 취업 준비마저 투자의 개념이 되자, 어떤 막중한 책임 하나가 사라진다. 기업이 ‘예비’ 노동자를 훈련시키는 데 시간과 비용을 들일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취업 경쟁이 과열될수록 기업은 이른바 ‘경력 있는 신입’을 맞이하며 비용을 절감한다. 이제 오직 개인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할 것인지의 문제만 남아버렸다. 취업 준비는 개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자원을 운용하고 투자하는 능력 발휘의 장이 되었다. 그 결과는 정빈이 자신의 성실함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