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자격] 직장을 글로 배워서...성실하지 않은 청년들의 구직 활동(1)

희정
희정 인증된 계정 · 기록노동자
2023/03/15

* 이 글은 4월 출간 예정인 『일할 자격』의 <1장. 생산적으로 살아라?: 성실하지 않은 청년들의 구직 활동> 일부입니다. 



#성실한/나태한 #생산적인/쓸모없는 #열정적인/의지박약한



고인이 된 청년 노동자를 취재할 일이 있었다. 물류센터에서 야간 노동을 하다가 과로사한 2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취재에 앞서 그에 관한 자료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왜 열심히 살지 않았지?
   
정말, 이 생각을 했다. 과로사를 한 사람이었다. 너무 많이 일해서 사망한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며 왜 열심히 살지 않았는지를 묻고 있었다. 내가 어떤 집단과 그의 성실을 비교하는지는 알만했다.
   
요즘 청년들.
   
이력서를 300통을 넣고도 좌절은 금지니까 301번째 이력서를 쓰는 사람들. 그런 청년들이 바글바글한 세상에서 지방의 작은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 후 ‘정식’취업을 하지 않은 채 몇 년째 아르바이트를 한 이는 이 사회에서 감히 성실하다는 평을 들을 수 없었다. 나조차 그를 성실하다고 말해주지 못했다. 고인을 향한 미안함이나 자책은 다음 문제였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딘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좀 다른 청년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아니 열심히 일할 생각이 없는 20~30대를 만나면 머리가 복잡해졌다. 직장 상사가 불합리하게 군다고 말하면 상사 욕을 함께 해줄 수 있고, 직장 갑질에 대해 글을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그래서 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 당혹해했다.
   
조금 더 버텨보지.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그가 지금 사회 현상을 비판한 것인지 그만둘 핑계를 찾은 것인지 판별하려고 했다.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반복하는 이들을 사회과학 서적에선 신자유주의 시대의 피해자라거나 불안정 노동의 당사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타인과 부대끼는 현실에서 이들은 ‘루저, 낙오자, 철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평가를 꼬리표처럼 달았다. 나 역시 사회를 이루는 퍼즐 하나였다.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쓸 때면 ‘그럴 수밖에 이유’를 직조하느라 애썼다.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물고 뜯고 난리인데, 열심히 일할 생각이 없는 사람을 그 자체로 세상에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 또한 타인의 ‘열심’을 측정하고, 이들의 불성실이 용납될만한 합당한 이유를 선별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작정하고 ‘좀 다른 청년’들을 만나기로 했다.
   
차곡차곡 스펙을 쌓지 않고, 취업 준비를 유예하고, 취업을 해도 자꾸 퇴사를 하고, 사람들이 정식 일자리로 보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하는, 세상의 기준에선 열심히 살지 않는 이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할 때 모욕과 수모를 당해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 또다시 시험을 치고. 그런데 이런 청년들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내가 인터뷰의 의도를 설명하자, 미리는 그 말을 받아쳐 자신을 소개했다.
   
“그거를 하지 않는 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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