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암투사-정종 ②] 방과 즉위는 방원의 큰그림었다
[1차 왕자의 난 ②]
세자의 생모 강씨의 죽음은 겉보기에는 아버지 태조가 멀쩡하게 버티고 있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내는 복잡했다. 특히 야심으로 가득한 형 방원이 있지 않은가.
세자의 생모 강씨의 죽음은 겉보기에는 아버지 태조가 멀쩡하게 버티고 있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내는 복잡했다. 특히 야심으로 가득한 형 방원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때마침 태조의 병세가 위독한 지경이 되었다. 이제 누가 무슨 짓을 한들 막을 수 있는 방패막이가 사실상 사라졌다. 세자의 지위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방원은 이 같은 우려를 배반하지 않았다. 강씨가 사망한 지 열사흘만인 음력 8월 26일 결국 쿠데타를 감행한다. 일단 태조 7년 1398년 8월 26일 《태조실록》의 기록을 보자.
“정도전…등이 임금의 병이 위독하다고 일컬어 여러 왕자를 급히 불러들이고는, 왕자들이 이르면 내노(內奴)와 갑사(甲士)들이 공격하고, 정도전과 남은 등은 밖에서 응하기로 하고서 기사일(己巳日, 8월 26일)에 일을 일으키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이 기록에는 이날 그 시각 정도전은 남은의 첩 집에 모여 ‘비밀모의’를 하였다는 것도 들어 있었다. 일단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서술하겠지만, 비밀모의라고 한 것에 홑따옴표를 찍어두겠다.
방원은 정도전을 의심했다. 정도전은 세자 책봉 과정에서 예상을 깨고 방석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조선을 유교 국가로 설계한 성리학자라면 응당 적장자를 세자로 세워야 함에도 막내 책봉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아니 적극적으로 밀었다. 정도전의 이 같은 모순적 행동의 행간에는 야심이 숨어 있다고 의심하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정도전은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왕자의 병권을 빼앗으려 시도했다. 혹시 있을 수 있는 변란을 사전에 막기 위한 대책이었으리라.
자, 이왕지사 들여다본 《태조실록》의 기록을 조금 더 보자.
여기에 점치는 사람이 “세자의 배다른 형 중에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이 여럿”이라고 발언하는 대목에 나온다. 태조의 이복동생 의안군(義安君) 이화(李和)가 방원에게 소위 ‘밀고’하면서 알려진 얘기다. 이화는 점치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