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기후위기 사전

라이뷰

미래를 위한 기후위기 사전

2023년, 기억해야 할 해

집현네트워크
집현네트워크 인증된 계정 · 더 나은 지식기반 사회를 지향합니다.
2024/02/27
에디터노트
얼룩소의 기후 소식을 꾸준히 봐 온 분은 아시겠지만, 2023~2024년은 기후 측면에서 정말 특이한 해였습니다. 기온과 해수면 온도가,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패턴을 보이며 치솟았습니다. 기온은 지난해 6월 이후, 월 평균기온 기존 최고 기온을 8개월 연속 경신했습니다. 수온 역시 3월 말 이후 줄곧 역대 최고를 유지하고 있으며 기존 최고 수온에 비해 격차도 큽니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기후 물리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장(부산대 석학교수)이 이 현상의 원인을 세밀하게 짚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것이 불확실하지만, 지구가 이전과 다른 기후 상태에 진입한 원인을 추정하게 합니다.

(*집현네트워크와 함께한 '미래를 위한 기후위기 사전' 라이뷰는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1기 연재를 마칩니다. 기후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상세한 내용을 담은 이 연재의 내용은 2024년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기후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뵙길 고대하며, 집현네트워크의 다른 연재에도 관심부탁드립니다.)
Pexels


잠깐 지난해를 되돌아보자. 2023년은 기후 과학자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이례적이고 놀라운 해였다. 기후 관측이 시작된 1850년대 이후 가장 더운 해였고 (그림 1), 지구 곳곳에 극심한 피해를 입히며 전례 없는 연간 기온 상승에 기여한 대규모 엘니뇨가 발달한 해였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각국의 정부 사절단, 비정부기구, 여러 업계 관계자와 이익 집단이 드디어 화석 연료 시대의 ‘종말의 시작(UN 기후변화협약 보도 자료, 2023년 12월 13일)’을 선언한 역사적인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UNFCCC COP-28)로 끝난 해기도 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 2023년은 이례적으로 높은 가을 기온(여수에서는 평소보다 6개월이나 이른 11월에 벚꽃이 피었다)과, 부산이 기후변화 솔루션 테마의 2030년 세계엑스포 유치에 실패하고 개최지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로 결정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회고는 이쯤에서 마치고, 지금부터 당면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2023년의 전례 없는 온난화

1940년대 이후 글로벌 연간 평균(raw mean) 기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림 1 위). 지난 수십 년간 글로벌 평균 기온 편차가 가속화돼 온 와중에 2023년은 글로벌 평균값이 기준 기간(1850~1879년) 대비 1.4℃ 가까이 상승한 극단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와 같은 인위적인 온난화 경향에 연간 기온 변동이 더해졌다 (그림 1아래). 전자는 온실가스 증가(온난화)와 에어로졸 농도 변화(한랭화)에 대한 순 기온 반응이고, 후자는 엘니뇨-남방진동(ENSO, El Niño–Southern Oscillation)을 비롯해 화산 분화(1982년의 엘치촌산 분화, 1991년의 피나투보산 분화 등)와 일사량의 소폭 변화와 같은 여러 요인이 유발한 기온 편차에 의해 발생했다. 2023년에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 남극 대륙 부근 남극해 일부(수십 년 사이에 처음으로 해빙이 급속도로 감소했다), 캐나다 북부, 바렌츠해, 일본 동쪽 북서태평양에서 가장 높은 연간 온난화가 발생했다 (그림 2).
 
최근 기온 관측에 따르면 전년 대비 0.3℃가 높아진 (그림 1 아래) 2023년의 급격한 기온 상승은 적어도 지난 60년간 전례 없는 일이다.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전년 대비 0.29℃가 높아진 1977년을 들 수 있다. 2023년의 이례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급격한 연간 온난화에 기여한 물리적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위: 산업화 이전 기준 기간 1850~1879년 평균(출처: NOAA) 대비 연간 지표면 대기 온도(℃) 상승(출처: ERA5). 데이터 출처: C3S/ECMWF. 아래: 파란색 막대: 전 세계 지표면 온도 평균의 연도별 차이. 하늘색 선: 중앙태평양(Niño 3.4지역, 5°N-5°S, 170°W-120°W) 평균 탈경향 연간 기온 편차.

기후 과학자들은 2023년 초여름부터 지구온난화 경향이 예상보다 증가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급격한 연간 온난화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으로는 네 가지 가설을 제안했다. A) 2022년 1월에 발생한 훙가통가-훙가하파이섬의 화산 분화로 성층권으로 약 1억 2500만~1억 5000만 톤의 수증기가 유입됐다. 이것이 강력한 온실가스로 기능하며 앞으로 수년간 지구온난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1, 2]. B) 지난 2020년에 UN 국제해사기구가 항만 인근의 공공 보건 증진을 위해 황산화물 함유 선박연료를 규제하기로 결정했다. 해운업계에서 새로운 규제에 부응하면서2023년 전 세계 이산화황 배출량이 줄어들었다. 그 결과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광이 증가했다. C) 동대서양 아열대의 대기 변화가 (그림 2) 급격한 연간 온난화 경향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D) 2020~2022년의 ‘트리플 딥’ 라니냐가 2023년에 엘니뇨(스페인어로 ‘어린 남자아이’)로 전환됐다. 네 가지 가설을 하나씩 살펴보자.
[그림 2] 1991~2020년 평균 대비 연간 평균 지표 기온 편차. 데이터 출처: ERA5, C3S/ECMWF.


먼저 훙가퉁가-훙가하파이 화산 분출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필자가 근무하는 기후물리연구단(ICCP)의 란 다이 연구원이 아일랜드 기상청(Met Éireann)의 티도 셈러 박사와 알레프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연구한 내용이다. 최첨단 지구 시스템 모델에 1억 2500만 톤의 성층권 수증기를 주입해 대규모 화산 폭발에 기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뮬레이션했다. 몇 주에 걸친 컴퓨팅 끝에 도출된 결과는 명백했다. 2023년에 관측된 이상 온난화는 훙가퉁가-훙가하파이 화산 분출의 영향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규모가 컸다(출처: 개인간 커뮤니케이션). 이는 화산 분출에 따른 성층권 수증기 복사강제력이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2023년 온난화는 0.05℃ 미만이라는 최근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3].
 
가설 B)로 넘어가자. 선박연료의 이산화황 배출량 감소에 의한 온난화 영향은 주요 선박 항로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림 2). 선박 배출량 감소의 영향은 해양의 열 관성 때문에 향후 10년간 점진적으로 누적돼 2030년에 0.03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4]. 하지만 2023년에는 그 영향이 최대 0.02℃밖에 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에 관측된 과도한 온난화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작은 수치다 (그림 1 아래).
 
가설 C)를 살펴보자. 2023년 늦봄에 이미 월간 전 지구 평균 기온 기록이 경신됐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지역은 북동대서양 아열대였다 (그림 2). 지역 평균 기온이 일시적으로 평소보다 1.3℃ 이상 상승했다. 5월과 6월에는 국지적으로 최대 3~4℃까지도 상승했다. 이와 같은 온난화는 약한 아조레스 고기압(포르투갈 서쪽 대서양의 아조레스 제도 부근을 중심으로 발달한 북대서양 아열대 고기압으로, 여름철에 가장 잘 발달함)과 그에 따른 약한 무역풍이 원인으로 꼽힌다. 약한 무역풍은 네 가지 방식으로 지역 수준 온난화에 기여한다. i) 카나리아 해류(북대서양 순환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해류)의 한류 상승이 줄어들고, ii) 풍속이 줄어들어 증발 냉각이 감소하며, iii) 하층 층운이 줄어들고, iv) 태양광을 흡수하는 사하라 황사의 해양 상층 이동량이 줄어든다. 
 
이 모든 요인은 북동대서양 아열대에서 카테고리 4(극심) 해양 열파가 급속히 발달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는 같은 기간 글로벌 평균 기온에 영향을 줬다. 그러나 대서양 아열대는 전 세계 지표 면적 대비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대서양 무역풍의 약화가 0.3℃에 달하는 연간 온난화 경향의 주범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3년 엘니뇨 – 제멋대로 구는 어린아이

필자가 부산의 아늑한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남동쪽으로 1만 2000 km 떨어진 곳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상 기후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태평양 적도 부근의 이상 온난화 현상인 2023/2024년 엘니뇨다 (그림 3). 위성 데이터와 해양 관측에 따르면, 이번 엘니뇨는 지난 100년 사이에 발생한 가장 강력한 기후 현상에 속한다. 2023년 초에 시작돼 태평양 적도 최동단에서 8월에 평균 대비 3.5 ℃가 상승했고, 이후 중태평양에서 온난화가 가속화돼 2023년 12월에는 약 1.5~2℃에 달하는 등의 이상 현상을 수반했다 (그림 3). 이 기후 현상은 2023년에 중앙아메리카, 호주, 미국 캘리포니아 등 세계 각지에서 이상 기후를 유발했다. 예측되는 강우 부족은 가까운 시일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와 잠비아의 식량 불안정을 악화시켜 해당 지역의 수백만 인구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그림 3] 1991~2020년 월 평균 대비 월간 해수면 기온 편차. 데이터: ERA5. 출처: C3S/ECMWF.


태평양 중부 및 동부 적도 지대의 대규모 온난화가 (그림 2, 3) 특징인 강력한 엘니뇨 현상은 엘니뇨가 최고조에 달하는 1월 이후 2~4개월간 일시적으로 글로벌 평균 기온을 최대 0.2℃(태평양 중부 적도 지대의 엘니뇨 온난화 1도당 0.07℃ +/- 0.2℃)까지 높일 수 있다[5]. 반면에 2020~2022년 ‘트리플 딥’ 라니냐와 같은 연속적인 라니냐 현상은 장기적인 자연적 한랭화를 유발할 수 있으며, 1998년~2012년 지구온난화 정체기때처럼 (그림 1) 글로벌 평균 기온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6]. 
 
엘니뇨 발생 시기의 중앙태평양 온난화는 증발량을 증가시켜 해양 한랭화 경향을 유발한다. 엘니뇨 발생 시기에는 운량도 증가하기 때문에 일사량이 줄어들어 해양 한랭화가 심화된다. 또 한편으로는 운량이 증가함에 따라 대기 중으로 응결되는 수증기가 증가해 기온이 상승한다. 따라서 엘니뇨 현상은 해양에서 대기로 ‘여분의’ 열을 방출하고, 이는 지구 에너지 균형에 영향을 준다. 라니냐의 경우는 반대다.
 
대규모 화산 분출이나 여타 요인이 없다면 엘니뇨남방진동(ENSO) 현상과 그밖의 자연적인 기후 변동에 따라 연간 글로벌 평균 기온이 소폭으로 변동할 것이다. 이는 전 세계 지표면 온도 평균의 연도별 변화와 중앙태평양 연간 기온 편차를 보여주는 그림 1아래에서도 볼 수 있다. 양쪽 시계열 모두 상관관계 계수가 0.4이다(p<0.05에서 유의함). 
 
따라서 모든 엘니뇨가 지구온난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1977년과 같이) 모든 연간 글로벌 기온 편차의 원인을 엘니뇨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2023년의 이례적인 지구온난화는 2022년 라니냐에서 2023년 엘니뇨로의 급격한 온난화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앙태평양에서 1도가 증가하면 지구온난화가 0.07℃ 유발된다고 가정하면 2023년에 관측된 연간 지구온난화 규모의 단 37%만 설명된다 (그림 1 아래).
 
이와 같은 약식 통계 논거에 따르면, 앞에 나온 세 가지 가설에 대해 짚어본 것과 같은 논증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외에도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 가지 가능성은 엘니뇨와 글로벌 평균 기온 사이의 계측 인자 0.07℃가 생각만큼 안정적이지 않으며, 대기 중 습도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기 중 습도는 연도 별 내부 기후 변동성과 장기적인 온실효과 경향의 영향을 받는다. 필자의 연구실에서 최근 알레프 슈퍼컴퓨터로 진행한 기후 모델 시뮬레이션[7]에 따르면, 글로벌 평균 기온의 연간 변동과 ENSO 사이의 평균 계측 인자는 산업화 전에는 0.06℃였고 지금은 0.07℃로 높아졌다. 앞으로의 지구온난화와 공통사회경제경로(SSP)3-7.0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를 감안하면 2050년경에는 지금보다 온난화된 환경에서 증가한 대기 중 습도 때문에 계측 인자가 30% 증가한 0.08℃에 달할 것이다 (그림 4). 지금보다 온난화된 지구에서는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롱 식[8]에 따라 수증기가 증가해 엘니뇨 발생 시기에 대류권 온난화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0건의 기후 모델 시뮬레이션을 통해 인위적인 영향 없이 내부 기후 변동성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계측 인자 값의 변화도 추정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림 4에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2023년에는 이 값이 자연적으로 0.11까지 상승할 수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따른 온난화 편차 값은 0.17℃(관측된 값의 약 60%)가 된다.
[그림 4] Niño 3.4 지역(5oN-5oS, 170oW-120oW)의 엘니뇨 온난화가 1도 일어날 때 전 세계 지표면 평균 기온이 변화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계측 인자의 시간에 따른 변화. 알레프 슈퍼컴퓨터로 커뮤니티 지구 시스템 모델(Community Earth System Model)을 사용해 진행한 100건의 시뮬레이션에서 얻은 데이터다[7]. (이미지 출처: 윤경숙, ICCP).


기후 과학자들은 지금까지도 2023년의 전례 없는 급격한 온난화의 원인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급격한 지구 기온 변동 경향의 원인과, 이것이 내부 기후 불안정 및 외부의 영향과 갖는 관계를 지금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위에 제시한 약식 분석을 살펴보면 2023년의 전년 대비 0.3℃ 온난화 중 40~60%가 ENSO로 설명될 수 있으며, 나머지60~40%는 북동대서양 아열대에서 일련의 연쇄적인 온난화 반응을 일으킨 자연적인 무역풍 약화를 비롯한 다른 여러 요인을 그 원인으로 봐야 함을 알 수 있다. 일본 동쪽 온대저기압 북태평양의 이례적인 대규모 온난화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림 2). 패턴 자체는 전형적인 엘니뇨 원격상관 패턴을 따르긴 하나, 열대 지방 요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그 규모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2023년의 전 세계적인 기후 이상과 1977년과 (그림 1 아래) 같은 그 밖의 이례적인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2024년 전망 

2024년은 어떻게 될까. 최신 기후 예측 모델에 따르면 2024년 4~5월경에 엘니뇨의 세력이 약화돼 라니냐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라니냐는 세계 각지에 해로운 기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아프리카의 뿔에서는 가뭄을,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는 산호초 표백을, 미국 남서부에서는 가뭄을 유발한다. 그림 1 아래를 보면 라니냐 때문에 지구온난화 속도가 2023년에 비해 일시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온실가스 농도가 계속해서 증가함에 따라 조만간 2023년보다 더 높은 기온이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2023년은 향후 5~6년에 평균적으로 어떤 현상이 발생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경고 신호라 볼 수 있다.
 
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2023년에 두바이에서 열린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기후 및 보건, 메탄 배출 감소, 기후 손실 및 피해 기금 발족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선언과 참가국의 ‘탄소 저감장치가 없는 석탄 발전의 단계적 감축’을 위한 노력 가속화, 그리고 ‘에너지 시스템 상에서 개도국이 주도하는 화석 연료로부터의 정의롭고 질서 있고 공정한 전환’을 위한 조치의 서약(‘UAE 합의’)을 발표하며 끝마쳤다(UN 기후변화협약 보도 자료, 2023년 12월 13일). 이 합의를 중요한 이정표라며 반기는 집단도 있었으나, 많은 기후 활동가가 ‘질서 있고 공정한’이라는 문구가 주요 화석 연료 기업이 이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가급적 오래도록 화석 연료를 통한 수익을 극대화해 시급한 기후 행동을 지연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각국 정부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석탄 및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고, 신규 화석 연료 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하며,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요인의 단계적 감축을 가속화할 적절한 탄소세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서로 상충하는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부 산하의 탄소중립위원회가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로드맵을 구축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전력공사와 두산에너빌리티가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과 같은 공공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아 인도네시아 자바섬 수랄라야에 대규모 석탄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1]. 암모니아 혼소와 같은 친환경 연료 옵션이 논의되긴 했으나[2], 수랄라야발전소가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석탄 매장량 중 일부를 태워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한민국의 공공 금융기관이나, 해외 건설 프로젝트에 융자금을 제공하는 여타 기관이, 기관에서 고려하는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탄소 발자국을 면밀히 살펴보고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용인되는 탄소 중립 프레임워크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근래 들어 듣기 좋은 말과 친환경 슬로건, 그리고 실질적인 기후 행동 사이의 명백한 간극을 설명하는 ‘그린워싱’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실생활에서도 그린워싱의 사례를 수없이 볼 수 있다. 일례로 호텔에서 재활용 용지로 만든 카드에 수건을 재사용해 에너지를 절약해 달라는 안내문을 인쇄해 비치하고 있으나, 객실과 심지어는 복도에서도 겨울철 난방 온도를 25℃까지 높여 수건 세탁에 의한 탄소 배출보다 수백, 수천 배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행인 것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가 좋은 예다.) 그러나 RE100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은 친환경 정책과 재생 에너지 기술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그 시행 속도가 매우 더딘 상태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은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될 젊은 세대가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줘야 할 때다. 미래에 국지적인 수준부터 국가적인 수준까지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할 주체는 바로 이들이다.



글    악셀 팀머만 부산대 석학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장
번역 신지영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시리즈 기획 하경자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한국기상학회장
편집 윤신영 alookso 에디터



더 나은 지식기반 사회를 향한 과학자·전문가 단체입니다. 상호 교류를 통해 지식을 집산·축적하는 집단지혜를 추구합니다. alookso와 네이버를 통해 매주 신종 감염병, 기후위기, 탄소중립, 마이크로비옴을 상세 해설하는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42
팔로워 1.4K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