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철학

동네청년 · 망원동에 기거하는 동네청년입니다.
2024/01/16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일본 및 서방의 대중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새로운 금기의 출현과 보급이다. 성소수자와 소수국적 및 인종 다이아스포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이전보다 엄격한 근거와 기준에 의거해 정해졌고 미디어와 공공장소에서 퇴출되었다. 이는 한국사회가 최근 경험한 갑질 논란, 번아웃 사회에 대한 비판,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 등의 이슈와 평행을 그린다. 흔히 정치적 옳음 또는 PC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서 비판되었던 이 엄격한 새 기준은 이제는 인지해야 마땅한 불가피한 흐름으로 이해되는 편인 것 같다.

이렇게 새로운 금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장려되는 가치들도 있는데 내 눈에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은 건강과 안전이다. 이전 사회에서 으레 받아들여지던 근면, 성실과 사회적 지위상승 등의 정형화된 중산층의 아메리칸드림 모델이 신빙성을 잃으면서, 또 물질의 풍요가 장기화되고 고소득사회를 유지하는 경제체제가 고착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변화보다는 개개인의 삶에 깃들 안정, 평온, 풍요를 보편적가치로 우선하기 시작했다. "건강이 최고야", "안전제일" 등의 슬로건은 새로울 것이 전혀 없긴 하지만 먹고살만큼만 일하고 싶은 이들 사이에서 별탈없이 안부묻듯 나눌만한 덕담으로서 이전보다 더욱 좋은 위치를 누리고 있다는 점은 명료해보인다.

코로나시대를 경험하면서 전례가 없었던 차원의 사회적합의가 이루어질 때에도 외적 모토는 주로 "안전"을 명분으로 하여 정당성을 찾았다. 백신접종의 사실상 의무화와 QR코드를 통한 위치추적 등 비상사태라는 특수성 없이 감행이 어려웠을 사회실험들이 빠른 시간 안에 합의가 되면서 공공의 추구가치도 자연스럽게 보건과 안전이라는 상징성에 기댈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시대의 규제가 완화 및 철폐되고 나서도 보건과 안전이라는 가치가 가진 항시적 정당성은 공익의 잠재적 강제성과 맞물려 있는 도구로서 여전히 유용하다. 쉽게 말하면, 애국가를 불러도, 태극기를 봐도 국뽕을 느낄 수가 없고, '국민의 단결을 통한 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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