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의 오뚝이

Loving you
Loving you · 글쓰며 여전히 자라는 어른
2022/06/21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갈 기회를 획득한다면 그 타임머신을 타고 나는 주저 없이 칠전팔기 오뚝이 친구 배진영을 만나고 올 것이다.
 1년 9개월이란 시간 동안 전라북도 정읍의 짧은 시골 생활이 지금까지의 전생애를 걸쳐 내 마음이 말하는 진짜 고향이다. 초등 2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우리 네 가족은 전라북도 정읍으로 이사를 했다. 갑자기 이사하게 된 경위를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뒤늦게 엄마를 통해 듣게 된 진실은 아버지의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 겸 자처한 지방 발령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골 학교로 전학하였다. 

정읍에서 진영이와 처음으로 점심 도시락을 나눠 먹던 날이 생생하다.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진영이의 밥 먹는 모습은 함께 식사하는 이의 식욕까지 돋워주는 특별함이 있다.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드는 묘한 힘이었다. 또, 진영이의 도시락은 남달랐다. 커다란 양은 사각 통 안에 보리밥, 그 위에 김치나 단무지 고추장 무침 등이 올려있고 또, 그 위에는 달걀노른자가 익지 않아 터져 뭉개있는 것이 다였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햄과 소시지에 케첩이 잔뜩 뿌려진 어린이 도시락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의 화려한 도시락 반찬을 부러워한다든지 자신의 도시락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맛있게 먹는 진영이의 밝은 모습을 나는 이유 없이 좋아했다. 하지만 진영이는 반 친구들이 아닌 선생님께 괴롭힘을 당하는 억울한 아이였다.

“배진영, 1번부터 5번까지 이 곱셈 문제 나와서 풀어봐!.” 
담임 선생님은 칠판에 연산문제를 빼곡히 적어놓고 오늘도 진영이부터 부르셨다. 반 아이들도 모두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수학 지도라는 명분을 내세워 진영이에게 분풀이하는 못된 어른의 폭력이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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