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 정치학] 나와 다른 세계에 ‘정치적 올바름’을 갖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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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8

[문학 속 한 장면] 앨리스 먼로 단편, <행복한 그림자의 춤>


‘분리’, ‘다른 세계’는 앨리스 먼로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영원히 이해, 소통, 도달 불가능한 다른 세계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단편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이렇다. 결혼도 하지 않고 피아노 교습 선생으로 평생을 보낸 할머니 선생님 마살레스가 있다. 선생님은 매년 6월이면 작은 연주회 겸 음악 파티를 연다. 지금은 장성하여 어머니가 된 예전 제자들이 각자 자녀들을 데리고 이 파티에 참석한다. 일종의 따뜻하고 소박한 전통이 된 셈인데, 문제는 누구도 이 파티에 기꺼운 마음으로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티 날짜가 가까워지면 어머니들은 서로 전화를 걸어 못 가는 핑계를 주고받다가 결국 모두의 (마지못한) 참석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는다.

마살레스 선생님의 음악 파티는 새로울 것도 기대할 거리도 전혀 없는 파티다. 아이들의 연주는 고만고만하고, 연주가 끝난 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은 어디서 저런 걸 구해오나 싶은 오래된 책이나 보드게임 같은 것이다. 테이블도 나름 구색을 갖춰 음식을 차려놓았지만, 누가 먹겠나 싶은 말라붙은 샌드위치 위에는 파리들만 윙윙 날아다닌다.

이때쯤 엄마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선물 자체가 아니라 마살레스 선생님이 선물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교습비를 10년 동안 딱 한 번 올렸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더욱이 올렸다손 치더라도 그만둔 사람이 두엇은 있었다.) 끝내는 필시 다른 방책이 있을 거라고 입을 모으곤 했다.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 집에서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웅진지식하우스, 374-375쪽

설마 하니 한 번 먹었다고 당장 죽기야 하려고요? 난 그저 샌드위치가 꾸덕꾸덕 마르면 어쩌나 그 생각만 했어요. 게다가 정오에 펀치에다 진저에일을 섞는 걸 보니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구요. 다 버리게 생겼어요.”
엄마는 갑자기 자세를 바꾸고 보일 스커트를 매만진다. 이런 식으로 파티를 베푸는 주인의, 그것도 그 집 거실에서, 상차림을 흉보는 것이 도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가증스러운 것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은 모양이다.


379쪽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마살레스 선생님이 준비한 선물과 상차림에 대한 은근한 뒷담화가 오가는 장면을 작가는 아이의 시점에서 전한다. 엄마들이 마살레스 선생님의 파티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당혹스러움이 아이의 시점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한데 전적으로 아이의 시점인 게 아니라, 전지적 시점과 결합된 시점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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