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오래도록 살았습니다 : 스웨덴의 구스타브 6세 아돌프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의 결혼

엘아라
엘아라 인증된 계정 · 한때과학자이고팠지만 지금은역사이야기중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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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왕태자 구스타브 아돌프는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과 1923년 결혼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둘이 결혼하기로 결정했다고 당장 결혼할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문제가 놓여있었습니다. 둘의 결혼에 가장 큰 문제는 감정적으로는 구스타브 아돌프의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만, 실제로 결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문제였습니다.

구스타브 6세 아돌프와 루이즈


스웨덴 왕가는 그때까지도 "귀천상혼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귀천상혼제도는 자신과 동등한 신분의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자신과 그 후손들의 상속권리를 박탈당하는 제도였습니다. 이것은 주로 동등상속을 인정하던 독일-유럽대륙쪽 통치가문에서 내려오던 방식이었습니다. 동등상속은 자녀들 모두가 아버지의 지위와 재산에 대한 상속권리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독일내 수많은 통치 가문들이 영지를 나눠야했고 이때문에 형제들간에 전쟁까지도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 덕분에 동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상속권을 박탈하는 귀천상혼제도가 발달했을 것입니다. 사실 루이즈도 귀천상혼한 가문 출신이었죠.
스웨덴 왕가의 경우는 좀 더 특수했는데, 당시 스웨덴 왕가는 1810년 프랑스 장군이었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 칼 요한으로 선출되면서 시작된 왕가였습니다. 당시 유럽 왕가 사람들은 나폴레옹 시대를 거치면서 왕족이 된 사람들에 대해서  약간 낮춰봤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평민출신으로 스웨덴 국왕이 된 칼 14세 요한에게도 해당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스웨덴 왕가가 더욱더 보수적으로 귀천상혼제도를 지지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프랑스의 육군원수, 스웨덴의 국왕 칼 14세 요한, 구스타브 6세 아돌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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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왕가 특히 공주님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살아있는 왕족은 관심 없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과학 이야기도 할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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