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갇힌 화자, 고대 언어에서 위안을 찾다
2023/04/25
에디터 노트
소설가 한강이 10일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를 밝히며 그의 작품이 "역사의 상처를 직시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삶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4월, 한강의 2011년 소설 '희랍어시간'이 영어로 출간됐을 때 이 소설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와 소설이 지닌 특유의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 다시 소개한다. (2024.10.11.)
By 이드라 노비 (Idra Novey)
새로운 언어를 공부할 때는 보통 "더위"와 "추위", "조용함"과 "시끄러움"처럼 반대되는 단어부터 배우게 된다. 우리가 새로운 언어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음을 깨닫는 때는 이런 단어 쌍의 깔끔함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조용하다"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는다" 또는 "말하지 않는다"같이 보다 정확한 의미를 지닐 다른 단어와 비교되는 어떤 정신적 잡음과 함께 다가오는 순간.
한강의 <희랍어 시간>에서 익명의 화자는 이런 단어의 메아리가 마음속을 압도하면서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화자는 "한두 단어의 배열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구토의 기미를 느끼는" 모국어인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 고대 그리스어 강좌를 듣기로 결심한다.
치료사는 그의 언어 장애가 어머니의 사망과 복수심에 불타는 전남편에게 어린 아들의 양육권을 잃는 등 여러 사건들이 겹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것들의 상실이 언어의 상실을 낳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치료사의 주장은 그에게 너무 단순하게 들린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장기간 말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원인을 한 가지 요인으로 좁히거나 어떤 전략적인 행동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건 신경학적인 문제다. 그는 "말로 열리는 통로"를 잃어버린 것이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고, 2018년 <흰>으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오른 한강 작가는 순응적이지 않은 비범한 여성의 이야기를 예리하게 기록하는 작가다. 한 작가의 주인공들은 결코 소리를 지르거나 가구를 던지지 않는다. 그들의 파괴 행위는 미묘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없다. <희랍어 시간>에서 이 여성은 언어 수업이 아들의 양육권을 되찾거나 말하기 능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실 그에게 고대 그리스어의 매력 중 하나는 수세기 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또 다른 화자인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예민한 남자 강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침묵에 매료된다.
감각의 어려움을 각각 겪고 있는 두 인물의 병치는 특별히 미묘하지 않다. 작가는 여자와 강사가 서로에게 위안을 얻는 궁극적인 방법을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책의 대부분을 그들에게 남아있는 극단적인 감각 경험을 회상하는 데 할애한다. 어린 시절 언어 장애를 겪었던 화자는 "말이 꼬챙이처럼 잠 속으로 파고들어 잠에서 화들짝 깨어나곤 했다"고 회상한다. 강사는 아버지가 같은 유전병으로 실명하고 가족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떠올린다.
회상에 대한 반대급부로 한강 작가는 한국어를 기록하는 문자 체계인 한글과, 그것이 고대 그리스어 문법, 그리고 강사가 어린 시절에 배운 독일어 문법과는 어떻게 다른지 통찰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언어 자체를 자기 계시의 원천으로 여기는 데 관심이 있는 독자를 위한 소설이다. 책을 읽는 동안 앤 카슨의 에세이가 떠올랐다. 카슨은 사포(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 역자 주)의 작품 번역으로 유명한데, 사포를 다룬 이 에세이에서 그는 "어떤 단어 사이에 내린 침묵"과 그 침묵을 우리가 어떻게 조율하는지가 우리의 정체를 규정한다 썼다.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화자는 음성 언어를 넘어서는 의미로 고도로 조율돼 있다. 소설 중반부에 이르면 여자는 침묵에 너무 깊이 도달한 나머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말과 닮아 ... 목소리처럼 대담하게 침묵을 휘젓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희랍어 시간>은 2011년에 한국어로 출간됐다. 그녀의 다른 책들이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지만, 이 책은 최근에야 영어로 번역됐다. 그동안 단독으로 번역을 맡았던 데보라 스미스가 이번 번역에서는 에밀리 예원과 함께 작업했다. 한국어에 문외한인 필자가 봤을 때, 협업으로 인해 영어 번역 속 한강 작가의 억양이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덜 분명하고, 문맥의 전달력도 덜 믿음직하다. 눈에 대한 표현은 너무 자주 반복된다. 마지막 장에서 "마음과 입술"이라는 언급이 여러 번 등장하는 부분도 생략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예외적인 지나침을 제외하면, 이 소설은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과 설득력 있는 서사가 돋보이며, 이를 통해 더욱 확실하게 완성도 높은 책으로 인정받았다.
한강 작가 심리적으로 혼란스럽고 복잡한 책으로 영미권에서 명성을 얻었다. 이 소설에도 그 흔적이 다수 등장한다. 언어에 대한 신체적 반응에 대한 한 작가의 예리한 문장 외에도 <희랍어 시간>에는 어머니가 자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매우 가슴 아픈 장면이 포함돼 있다. 이 여성은 어느 날 어린 아들을 집에 잠시 머물게 했고, 아들은 질문을 퍼부었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적어도 이전처럼 소리 내어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아들이 자신만큼이나 강렬하게 이름과 언어에 대해 생각했던 이전의 대화를 떠올린다. 둘을 가장 닮은 자연물의 이름을 지어보자는 어머니의 제안에 아들은 자신을 '반짝이는 숲'으로, 어머니는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으로 짓겠다고 한다. 소년의 날카로운 대답은 아버지가 아들의 공동 양육권을 끊어 낼 때 두 사람이 잃게 된 친밀했던 순간과 두 사람이 공유했던 그들만의 정서를 떠오르게 한다.
이 소설은 부모와 자식, 강사와 학생 사이에서, 또는 크게 소리 내어진 말과 다른 사람이 내민 손바닥에 손가락을 대고 고통스럽게 추적하는 말 사이에서의 언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뢰에 대한 찬사다.
치료사는 그의 언어 장애가 어머니의 사망과 복수심에 불타는 전남편에게 어린 아들의 양육권을 잃는 등 여러 사건들이 겹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것들의 상실이 언어의 상실을 낳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치료사의 주장은 그에게 너무 단순하게 들린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장기간 말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원인을 한 가지 요인으로 좁히거나 어떤 전략적인 행동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건 신경학적인 문제다. 그는 "말로 열리는 통로"를 잃어버린 것이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고, 2018년 <흰>으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오른 한강 작가는 순응적이지 않은 비범한 여성의 이야기를 예리하게 기록하는 작가다. 한 작가의 주인공들은 결코 소리를 지르거나 가구를 던지지 않는다. 그들의 파괴 행위는 미묘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없다. <희랍어 시간>에서 이 여성은 언어 수업이 아들의 양육권을 되찾거나 말하기 능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실 그에게 고대 그리스어의 매력 중 하나는 수세기 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또 다른 화자인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예민한 남자 강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침묵에 매료된다.
감각의 어려움을 각각 겪고 있는 두 인물의 병치는 특별히 미묘하지 않다. 작가는 여자와 강사가 서로에게 위안을 얻는 궁극적인 방법을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책의 대부분을 그들에게 남아있는 극단적인 감각 경험을 회상하는 데 할애한다. 어린 시절 언어 장애를 겪었던 화자는 "말이 꼬챙이처럼 잠 속으로 파고들어 잠에서 화들짝 깨어나곤 했다"고 회상한다. 강사는 아버지가 같은 유전병으로 실명하고 가족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떠올린다.
회상에 대한 반대급부로 한강 작가는 한국어를 기록하는 문자 체계인 한글과, 그것이 고대 그리스어 문법, 그리고 강사가 어린 시절에 배운 독일어 문법과는 어떻게 다른지 통찰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언어 자체를 자기 계시의 원천으로 여기는 데 관심이 있는 독자를 위한 소설이다. 책을 읽는 동안 앤 카슨의 에세이가 떠올랐다. 카슨은 사포(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 역자 주)의 작품 번역으로 유명한데, 사포를 다룬 이 에세이에서 그는 "어떤 단어 사이에 내린 침묵"과 그 침묵을 우리가 어떻게 조율하는지가 우리의 정체를 규정한다 썼다.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화자는 음성 언어를 넘어서는 의미로 고도로 조율돼 있다. 소설 중반부에 이르면 여자는 침묵에 너무 깊이 도달한 나머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말과 닮아 ... 목소리처럼 대담하게 침묵을 휘젓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희랍어 시간>은 2011년에 한국어로 출간됐다. 그녀의 다른 책들이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지만, 이 책은 최근에야 영어로 번역됐다. 그동안 단독으로 번역을 맡았던 데보라 스미스가 이번 번역에서는 에밀리 예원과 함께 작업했다. 한국어에 문외한인 필자가 봤을 때, 협업으로 인해 영어 번역 속 한강 작가의 억양이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덜 분명하고, 문맥의 전달력도 덜 믿음직하다. 눈에 대한 표현은 너무 자주 반복된다. 마지막 장에서 "마음과 입술"이라는 언급이 여러 번 등장하는 부분도 생략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예외적인 지나침을 제외하면, 이 소설은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과 설득력 있는 서사가 돋보이며, 이를 통해 더욱 확실하게 완성도 높은 책으로 인정받았다.
한강 작가 심리적으로 혼란스럽고 복잡한 책으로 영미권에서 명성을 얻었다. 이 소설에도 그 흔적이 다수 등장한다. 언어에 대한 신체적 반응에 대한 한 작가의 예리한 문장 외에도 <희랍어 시간>에는 어머니가 자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매우 가슴 아픈 장면이 포함돼 있다. 이 여성은 어느 날 어린 아들을 집에 잠시 머물게 했고, 아들은 질문을 퍼부었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적어도 이전처럼 소리 내어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아들이 자신만큼이나 강렬하게 이름과 언어에 대해 생각했던 이전의 대화를 떠올린다. 둘을 가장 닮은 자연물의 이름을 지어보자는 어머니의 제안에 아들은 자신을 '반짝이는 숲'으로, 어머니는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으로 짓겠다고 한다. 소년의 날카로운 대답은 아버지가 아들의 공동 양육권을 끊어 낼 때 두 사람이 잃게 된 친밀했던 순간과 두 사람이 공유했던 그들만의 정서를 떠오르게 한다.
이 소설은 부모와 자식, 강사와 학생 사이에서, 또는 크게 소리 내어진 말과 다른 사람이 내민 손바닥에 손가락을 대고 고통스럽게 추적하는 말 사이에서의 언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뢰에 대한 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