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뒤처지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

박영서
박영서 인증된 계정 · 울고 웃는 조선사 유니버스
2023/04/26

 어린 시절의 저는, 동네 어르신들의 집에 종종 불러 갔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였어요. ‘고장 난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사실 가전제품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 해당 제품의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셔서 발생하는 문제가 9할쯤 됐습니다. TV 리모컨의 ‘외부입력’ 기능을 몰라서 TV를 보지 못한다든가, 핸드폰의 ‘갤러리’ 버튼을 못 찾아서 찍은 사진을 볼 수 없다든가 하는 문제들 말이죠. 어린 날의 저는 ‘쉽고 편한 한국어로 쓰여있는 이 기능을 왜 모르시지?’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매번 똑같은 설명을 드리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요즘 글 쓰는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는 아무래도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일 텐데요. 3년 전쯤인가, 한 교양수업 때 미국에서 개발된 ‘소설 쓰는 인공지능’을 소개받은 적 있습니다. 그때 저는 ‘역사는 왜 의미 있는지에 대한 글을 써줘’라는 입력어를 넣었었는데, 인공지능은 몇 차례의 시도 끝에 헤겔과 카를 인용한 그럴싸한 글을 써냈습니다. 나름 조선사로 밥 벌어먹고 있는 저는 쓸 수 없는 글이었죠.
   
그 뒤, 멀게만 느껴졌던 인공지능에 대한 소식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뉴스와 커뮤니티를 장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재기발랄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더군요. 소설을 쓰시는 분들도 인공지능이 소설 전체를 써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플롯과 클리셰는 그럴싸하게 짜낸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제가 쓴 초고를 인공지능에게 수정을 맡겼더니, 나름 깔끔한 문장으로 다듬어지는 것 또한 본적이 있지요.
   
조금 다른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저의 작가 활동은 조선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쓰고 싶은 영역은 많은데, 능력 부족을 귀찮음으로 포장하여 핑계만 대고 있지요. 조선사가 주는 현장감과 디테일, 즉 깨알 같음에 여전히 매료되어 있지만,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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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유영하는 역사교양서 작가, 박영서입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썼으며, 딴지일보에서 2016년부터 역사, 문화재, 불교, 축구 관련 기사를 써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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