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밀려오는지도 모른 채,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2/11/17
  나란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동기부여가 안 되면 몸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동기부여가 된 상황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는 열의를 보인다. 고3이 되었지만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고 나의 이런 면은 변하지 않았다. 공부나 대학에 동기부여가 돼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다면 참 좋은 그림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신분은 고3이었지만, 전혀 고3답지 않은 날들을 보냈다.

"누나 왜 여기 있어요? 고3 아니에요?"
한 학년 아래인 후배는 툭하면 놀러 나온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니까 뭐 그냥 놀려고. 공부? 재미없는데... 왜 해야 하지? 대학은 왜 가는데? 그러면 인생이 뭐가 달라지는데?"
다른 친구들은 시청률 40%를 넘기며 전 국민이 보다시피 한 [가을동화]를 보느라 공부를 못했다며 짜증을 내는데, 나는 드라마는커녕 아예 집구석에 붙어있지를 않았다. 오락실에 가서 신나게 게임을 하거나 당구장에서 뿌연 담배 연기 속에 당구를 치거나, 노래방에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나와 친한 친구들은 전부 흡연자였고 늘 내 교복에는 진한 담배 냄새가 배어있었다.

  공부를 하긴 했다. EBS 문제집 몇 권을 사서 과목별로 아주 적은 분량만 매일 풀었다. 고3다운 전투적인 공부는 전혀 없었고, 막 입학한 초등학생 마냥 학습지 풀듯 한 장씩 두 장씩 과목별 문제만 풀었다. 문과인데 수학을 가장 좋아하는 이상한 학생이었고, 문과로 대학을 가는데 딱히 쓸모가 없는 수학 공부만 조금 했다. 좋아한다는 동기는 있었으니 나름 일관된 인간이었다. 참 밤샘 같은 건 없었다. 

  처음으로 춥지 않은 수능이었다. 매해 수능날마다 한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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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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