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 정치학] 발전의 논리에 가장자리로 밀려난 삶
2022/08/03
[문학 속 한 장면] 앨리스 먼로 단편, 『휘황찬란한 집』
메리는 달걀 장수 풀러턴 할머니네 뒤란 층계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듣고 있었다. […]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었던 예전, 메리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도 시치미를 뚝 떼고 청하고 또 청해 들었었다. 그렇게 새로 들을 때마다 기억 속에 남았던 일화들은 내용과 의미와 색채가 조금씩 다르면서도 순수한 실재로 거듭나서 대개 전설의 끄트머리에 붙게 된다.
앨리스 먼로, 『휘황찬란한 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 웅진지식하우스, 89쪽
메리라는 젊은 여성이 달걀 장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노인들의 이야기란 대개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지만, 화자는 시치미를 떼고 몇 번이고 이야기를 다시 청해 듣곤 했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들리며 일종의 ‘전설’의 지위를 갖게 된다고 화자는 말한다.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는 12년 전 홀연히 집을 떠난 남편 이야기이다. 나무에서 체리를 따고 있던 양반이 지나가던 어떤 사람하고 체리를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옷을 챙겨 입고 잠깐 시내에 다녀오마고 나가더란다.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더니 오래 안 걸린다고 대답하더란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혼자 사는 사연을 할머니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내년 여름엔 체리를 싸게 팔 테니 와서 양껏 따가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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