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정의, 공적인 정의 - 경종의 복수법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3/09/11
고려 초의 일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려 태조 왕건은 무차별적인 혼인 동맹을 맺었습니다. 후비전에 등재된 부인들만 29명. 그중 13명의 부인으로부터 아들만 25명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아들 사이에 당연히 치열한 권력 암투가 있었을 것입니다. 왕건은 장남 무(武)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2대 혜종입니다.

혜종은 일찍이 왕건을 따라 스무 살부터 종군하여 군공을 세운 용맹한 왕이었습니다. 왕규가 혜종을 암살코자 자객을 왕의 침실로 집어넣었는데, 혜종이 한주먹에 자객을 때려죽일 (一擧斃之) 정도였죠.

하지만 잠들었다가 당하면 속절없는 노릇인지라 항상 갑사들에게 호위를 시키느라 편한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려 초 호족들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 하죠. 이런 명백한 반역행위를 보고도 국왕이 응징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혜종은 이런 스트레스로 일찍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혜종은 서른넷의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미처 후사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혜종의 뒤를 이어서 왕위에 오른 정종은 태조의 둘째 아들입니다. 혜종과는 달리 외가도 튼튼했습니다. 정종이 제일 먼저 처리한 일은 왕규를 처단하는 일이었습니다. 왕규는 두 명의 딸을 태조의 후비로 넣었고, 또 다른 딸을 혜종에게도 보냈습니다. 자매지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지위가 갈린 셈입니다. 이렇게 위세를 떨치니 국왕도 조심스럽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개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정종은 평양으로 천도를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일찍 죽는 바람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습니다. 정종도 27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왕위는 친동생에게 물려졌습니다. 새로 왕위에 오른 사람이 광종입니다.
<역사저널 그날> 캡처

광종은 과거를 실시한 최초의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고려사>에서 평가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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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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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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